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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8월 13일
  • 3분 분량

시목동재

<이제 공범이네요>


부지 (트위터 @fleissig_life)


창문에서 바깥이 보이지 않았다. 하얀 안개만이 가득했다. 원래는 서부지검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시목은 한동안 창문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은, 출근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역시 정시에 집을 나섰다. 정리해야 할 자료가 넘쳐났다. 동재가 휴가를 가는 바람에 원체 많던 일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그래도, 다음 날 동재가 오면 다시 넘길 생각이었다. 그가 주고 간 일은 최대한 나중에.

시목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커튼을 쳤다. 곧바로 서랍 안에 손을 넣고 물건을 찾기 위해 뒤적거렸다. 3일간 고민하며 열심히 고른 시계였다. 집에서는 언제 동재가 무엇을 찾아낼지 몰랐기 때문에 직장에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시목은 동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 검사님―,”

“우리 황 프로, 무슨 일이야?”

“진심으로 제가 검사님 서류를 다 정리하라고 보내신 겁니까?”

“그럼, 황 프로 아니면 그걸 누가 해.”

“뭐, 알아서 하시죠. 제 일도 많아서 검사님 돌아오셔도 그대로일 것 같은데.”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오늘 안개가 심하게 꼈으니까, 조심히 오라고 하고 싶었는데. 그러나 시목은 그렇게 말을 하지 못했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 보기로 했다. 생일 전야제라고 해야 할까. 전날 사장이 준 와인을 챙겼다. 30년산 발렌타인. 꽤 값이 나가 보이는데, 하고 생각했다. 와인은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지만 비싼 와인을 꼭 먹어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동재가 생각났다.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어 미안해하면서도, 시목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선물을 받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들이 가져다 바친 물건들을 팔아 빚을 갚아 나가고, 주식을 굴려 가며 또 빚을 갚고. 그러나 아무도 시목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빚을 갚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직장에서는 누구보다 성실했기 때문에. 혼자서 자수성가한 줄 알고 있었다. 동재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한다는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될, 혼자만 알아야 할 비밀이었다.

*

“웬 발렌타인?”

“서 검사님이 좋아하시잖습니까.”

“비싸잖아. 네가 무슨 돈으로?”

“그 정도 능력은 있습니다. 싫으면 다시 팔고요.”

“아니, 좋아. 네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나 해서. 술도 잘 안 마시는 녀석이.”

“전 안 마십니다. 검사님 혼자 마시세요.”

동재는 옆에 시목을 앉혀 두고 와인을 따라 마셨다. 시목은 끝까지 마시지 않았다. 옆에서 안주만 조금 집어먹을 뿐이었다. 혼자 반 병을 다 마신 동재는 시목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곯아떨어졌다. 시목은 제 키보다 족히 팔 센티미터는 큰 동재를 업고 침대에 뉘었다. 그는 잠시 동재를 바라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옆에서 같이 잘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시목은 소파에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동재가 저의 집에서 잔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시목은 동재가 깨어날 시간에 맞추어 방에 동재의 옷을 가져다주었다. 먼저 출근합니다, 하고 쪽지에 쓴 후 집을 나섰다. 오늘은 동재의 퇴근 시간에 맞춰 같이 퇴근할 예정이었기에, 일찍 출근해서 일을 먼저 시작하려고 했다. 평상시와 똑같았다. 조서를 올리고, 전화 몇 번 받고, 불구속 처리하고, 자백을 받아내고. 사무실 창문을 통해 본 바깥은 여전히 안개가 가득했다. 이 안개가 시목을 보호해 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안개 속의 시목을 보지 못한다.

동재가 씩씩거리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시목이 창밖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말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예.”

“무슨 날인데?”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 체결된 날이요.”

“또.”

“나사 설립일입니다.”

“됐어, 말을 말아, 내가.”

시목은 가까스로 서 검사님 생일이요, 하는 말을 삼켰다. 모르는 척을 해야 더 놀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그런 사소한 것들은 알고 있으면서 왜 가장 중요한 것을 몰라, 하고 동재는 중얼거리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의 질투에 시목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6시에 맞추어 시목은 동재의 사무실 문 바깥에 서 있었다. 어, 네가 웬일이야. 오늘 할 일을 다 해서요. 같이 퇴근해. 빨리 안 하시면 갑니다. 동재는 서둘러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넥타이를 고쳐 매며 시목을 쳐다봤다. 여전히 무표정. 지금까지 시목을 봐오며, 할 말 못 할 말 다 하는 모습이 자신과는 무척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큰 미움을 사지 않으니까. 자기는 있는 예의 없는 예의 다 차려가며 살아가고 있는데, 정직히 사는 시목이 부러웠다.

“그냥 집에 가실 겁니까?”

“그럼, 어디를 가? 집에 안 가고.”

“저녁, 안 먹습니까.”

“왜, 네가 사주게?”

“네.”

웬일이래. 동재가 눈알을 굴리는 사이 시목은 그를 조용하고 아늑한 식당으로 이끌었다. 노랗고 붉은 조명이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시목은 정식을 두 개 시켰다.

“비싸보이는데.”

동재가 말했다.

“생일이시니까.”

“…몰랐던 거 아니었어?”

“축하합니다.”

동재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일이 더 많았던 하루였다. 시목이 처음이었다. 동재는 시목의 손을 덥석 잡았다. 원래 같았으면 손을 뺐을 시목이 가만히 있었다. 그는 가만히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동재의 손목에 채웠다. 하얀 손목에 은색 시계가 제법 잘 어울렸다.

“뭐야, 이거?”

“선물이요.”

“한정판인데, 엄청 비싼데…, 이걸 어떻게 샀어?”

“…어디서 받았습니다. 비싼 겁니까? 그냥, 검사님이랑 어울려서.”

“잠깐, 받았다고? 그럼 너 뭐, 스폰, 그런 거 받는 거야? 난 이거 못 받아. 다시 돌려드려.”

“…어차피 아무도 모를 겁니다. 제 이미지가…, 그래서요.”

“그래도 안 받아. 그런 선물 필요 없어.”

“그럼 뭘 원하십니까? 그리고 검사님 말 하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니, 공범이네요, 이제.”

“황시목이랑 공범…, 괜찮네. 그러니까, 형이라고 한 번만 불러줘.”

시목은 잠깐 침묵했다. 동재는 그런 시목을 빤히 바라봤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는 시목이 입을 열 때까지 지켜봤다.

“…형.”

“뭐라고? 잘 안 들려. 이름까지.”

“동재 형.”





비리검사 황시목 ☓ 클린검사 서동재를 연출하려고 했는데 잘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는데, 완벽하지는 않지만 즐겁게 작성하였습니다. 다른 작가님들 사이에서 함께 합작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8월 15일 비밀의 숲 시즌 2 많이 시청해주시고 시목동재도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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