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8월 13일
- 4분 분량
논커플링, 황시목 & 영은수 & 서동재
<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
엘 (트위터 @silvester_wind)
특임 검사로 임명된 시목은 하루하루가 야근길이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 없다고, 자신을 특임 검사로 지목한 상사, 아니! 자신의 짬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상사에게 특임은 지금부터냐는 질문을 한 후, 그 상사의 고개가 미세하게 끄덕여지자 너나 할 것 없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정리 따위 신경쓰지 않고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었다.
시목은 동료들이 우르르 나가는 그 순간에도,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자신들의 비리와 범죄가 밝혀질게 무서워 자신을 피해 나가는 그 순간에도, 흔들림없이 이성과 표정을 유지했다. 특임검사와 범죄자로 만날 동료에 대한 측은함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대각선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앉은 은수 역시 불안한 시선으로 우르르 나가는 선배 검사와 동료 검사, 후배 검사들을 보고 있었다. 그곳에 남은 사람은, 전 검사장 이창준, 특임검사인 자신과, 불나방 영은수. 셋 뿐이었다.
시목은 모든 검사들을 퇴근시키고 홀로 자료를 보다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법을 필요로 하던 어린 날의 자신이 떠올랐고, 검사 선서 후에 명찰을 받고 서부지검에 들어서던 자신이 떠올랐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현실은 처참했다. 진실만을 따라가겠다는 검사는 없었다.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도 없었다.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겠다는 검사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연수원 기수도 같고 입사일도 같은 동료 검사는, 제게 그랬다. 너도 공범이라고, 너도 공범이라고. 이곳에 정의 따위는 없다고. 그러니까, 너도 공범이라고. 곧 그리 될 것이라고.
무거운 걸음으로 퇴근하던 구둣발이 다른 곳을 향했다. 구둣발이 향한 곳은 직장도 아니고, 집도 아닌, 하루종일 불을 밝히며 늦게 퇴근하는 직장인들에게 더없이 유용한 24시 편의점이었다. 형식적인 인사와 함께 종소리가 세 번 흔들리다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컵라면에 김밥.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아니, 선택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 같았다. 늦은 식사를 챙길 준비를 하며 편의점 구석 자리에 앉았다. 검사가 된 이후로 매번 늦는 끼니는 이제 익숙하다 못해 친근해졌다. 이제는 제 친구 같았다.
얼어붙은 손을 라면 그릇에 얹었다. 빨갛던 손은 열기에 점점 녹아가며 따뜻한지, 추운지, 뜨거운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감각을 되찾고 있었으며, 목에 건 명찰은 자신의 주인인 ‘영은수’ 라는 이름 석자를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라면 한 젓가락을 먹으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명문가 집안, 누구보다 당당했던 아버지, 청렴결백하던 법무부 장관에서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된 아버지, 지금의 아버지를 만든 철천지 원수인 차장.
차장에게 ‘나 네가 모함한 법무부장관 딸이오.’ 할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능히 하고도 남았다. 제가 검사가 된 이유는 그것이었다. 아버지 원수 갚으려고. 그러나 이 사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게 분명했고, 은수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라면 두 젓가락을 다시 입에 갖다대었다. 자신이 왜 밤 새워가면서 그렇게 피 터지게 공부를 했고, 왜 검사 선서를 했으며, 왜 검사가 됐는지 떠올렸다.
첫 번째로는 아버지였다. 모함 때문에 아버지가 저리 되었다. 예전의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두 번째로는 정의였다. 정의로운 검사가 되고 싶었다. 비리를 모른 척 외면하지 않는 검사, 정의를 실현하고 법을 수호하는 검사도 되고 싶었다. 대한민국 검사라면 누구나 거쳐간다는 검사 선서처럼. 그런 검사가 되고 싶었다.
라면 세 젓가락을 먹고 나서야 밖이 보였다. 그리고 창에 비친 자신이 보였다. 검사 명찰을 목에 달고, 편의점 자리 구석에 앉아 컵라면과 김밥으로 늦은 끼니를 때우는 자신이 보였다.
‘그만 할까.’
‘네가 뭐 때문에 검사가 됐는데!’
‘이게 맞는 걸까.’
‘잘 생각해, 네가 뭐 때문에 검사가 됐는지.’
남은 김밥과 라면을 입에 넣고 꼭꼭 씹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때, 차마 반항하지 못한 자신과, 검사가 된 자신이 보였다. 자신은 그들과 공범이었다. 침묵에 침묵을 지킨, 공범이었다.
특임검사로 황시목이 임명되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일하는 방으로 향했다. 아, 망했다. 타협도 없고 거래도 없으며 감정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황시목이 특임 검사라니,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안색은 하얗게 질려갔다.
은폐, 조작, 떠넘기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다만 그것은 자신이 주무를 수 있는, 자신과 같이 누군가에게 뇌물을 받아먹은 동료 검사, 혹은 자신에게 약점을 잡힌 검사. 딱 그들만 가능했다.
바꿔 말하면 자신의 아랫 기수, 뇌물 받아먹은 정황도 없고 주무를 수도 없는, 황시목 구슬리기는 이미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검사를, 특임검사가 된 그 인간을, 어떻게 구워삶는다는 말인가.
그의 머릿속에 지나가는 생각은 한 가지였다. 아니, 머리를 쥐어짜도, 여러 생각을 하려해도 드는 생각은 정말 하나 뿐이었다.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도,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하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감춰야 한다.’
‘어떻게든 저 독사같은 놈을, 없애야한다.’
남은 일이 없음에도 공판에 대비한다는 핑계로 남아서 머리를 감쌌다. 저 독종을 어떻게 없앨지. 감정 따위 찾아볼 수도 없는, 저 독사같은 인간인 황시목을 어떻게 밟아줘야 여기서 제 발로 나가게 할지.
딱 두 사람만 제외한 모든 이가 공범이었다. 불나방 영은수와 독사 황시목을 제외한 모든 이가, 서부지검 소속 모든 검사가 자신의 공범이었다. 누구 하나 걸리면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 마냥 걸려 감옥에서 썩다 나올 것은 이미 안 봐도 비디오였다.
메모장을 꺼내 1차적으로 구워삶을 검사 한 명을 추려냈다. 아랫 기수 검사. 자신의 뒤에 있던 검사. 최근에 뇌물을 받아먹어서 아는 게 없는 검사. 전화번호까지 찾아내 문자를 보냈다.
[뇌물 받아먹은 검사 싹 다 집합시켜. 윗 기수 아랫 기수 상관없이, 싹 다.]
[누가 뭐라하면 내가 집합 시켰다고 해.]
[아, 너도 포함이야. 공범인 주제에 청렴한 척 쏙 빠지는 건 아니겠지?]
안개 속에 철저히 가려져야 했다. 안개는 걷히더라도 이후 내릴 많은 비로 앞을 분간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게 제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였으니까. 무조건 그래야만 했다.
그들과 나는 공범이다. 특임 검사가 임명되자마자 그 자리를 뛰쳐나간 윗기수, 아랫기수.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섞인 나, 나는,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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