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8월 13일
- 9분 분량
창준시목
<범인존재의이유>
룸룸 (트위터 @lulu_lum)
※주의※
내용의 전개와 특성상 혈흔묘사와 상처묘사, 등장인물 사망요소 등 보기에 불편한 부분들이 다소 존재할 수 있으니 이런 류에 민감하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그만하고 싶습니다.’
‘주어가 빠졌는데.’
‘알아 들으셨잖습니까.’
‘화가 난거야, 아니면 떠보는거야?’
‘둘 다 아닙니다.’
‘변명 늘어놓을 생각도 없다 그건가.’
‘언젠가는 할 말 지금 하는 것 뿐입니다.’
언젠가는 할 말. 황시목이 그랬었다. 입매 하나, 눈매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양새로 밥은 먹었냐 묻는 어조. 성질이 돋을만큼 그 다워서 일어나 나서는 뒷모습을 쫒지도 않았다. 누가 봤다면 차인 주제에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욕을 했겠지.
그 이후로 제대로된 모습을 본 기억이 있던가. 삐딱하게 백팩을 메고선 복도 모퉁이를 도는 실루엣이나 언뜻 걸쳐본게 다였다. 이젠 습관같은 안부를 물을 사이도 서류 따위를 핑계로 소파에 앉혀놓는 사이도 아니었으니. 어떠한 성격인지 알기에 부러 신경을 끊었었다. 그만한 결정을 내린건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황시목 말처럼 언젠가는 둘 중에 누가 듣거나 말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네가 여기에 있어."
형광등이 낡았는지 껌뻑거렸다. 사방을 둘러싼 타일벽은 냉기가 가득해 가뜩이나 창백한 살갗이 더 푸르스름한 빛을 띠었다. 마른 입술 위로 뜯어져 일어난 각질이 뿌옇다. 생기가 없다. 모포 위로 드러난 어깨에는 짙고 옅은 멍자국이 선연했다. 뺨이며 이마는 온통 긁혔고 손끝과 손톱은 무언가에 밟혔는지 부러지거나 빠진 모양새라고 했다. 하복부에는 같은 크기의 자상이 세 개. 감싸여진채 보이지 않아도 올라온 보고서를 읽고 또 읽은 탓인지 이미 다 외워버린 상해의 흔적들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그려졌다.
"누구와 싸운거니."
상처 투성이 얼굴이지만 알아보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수십번은 더 되물어야했다. 보고서에 쓰여진 이름이 네가 아닐거라고. 여기에 누워있는 너는 네가 아닐거라고.
"시목아."
결국 목 멘 소리가 나와버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질문을 건네고 이름을 불러도 온통 퍼지는건 메아리다. 꽉 닫힌 입은 절대 열리지 않을 것이다.
***
공덕동 아파트 단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인근 경찰서와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신고 전화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건 약 5분 후 였다. 해당 경찰의 말로는 피해자가 흘린 피는 채 굳지도 않아 보도블럭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고 했다. 용의자는 아파트 부근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추측한 경찰이 곧바로 수색에 들어갔으나 수상한 사람을 봤단 목격자도 없었고 그때 하필 현장의 가로등이 꺼져 CCTV 화면은 꺼진 듯 까매 판독이 불가능했다.
피해자의 신분이 신분인 만큼 공개수사로 돌리기엔 어려움이 있다 판단되어 경찰 내부에서는 조용하지만 신속히 수사팀이 꾸려졌다. 피해자의 신상은 지갑에 있던 신분증과 품에 있던 공무원증 덕에 빠르게 파악될 수 있었다. 이름은 황시목, 서울서부지검 형사 3부 소속 검사.
***
시간은 물흐르듯이 지나고 있건만 제출되는 수사 보고서의 내용은 발전이 없었다. 사건이 일어난지 일주일이 흘렀고 시목은 어제 발인을 했다. 살인사건 피해자치고 꽤 빠른 조치였지만 사인이 명확하고 몸에서 나온 별다른 단서나 증거가 없어 일찍이 유족이 인도해갔다.
한참을 있다 나온 영안실 앞에서는 시목의 모친이 앉아있었다. 상사로서 위로의 말을 건네야할지 사적인 의미로서 말을 건네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망연히 서있기만 하는 자신의 앞에서 그녀는 그저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결국은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시목의 장례식은 간결했다. 그의 가족은 일체 화환도 받지 않았다. 수많은 검경의 관계자들이 다녀갔지만 오래 머문 이는 없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다. 남은 울음의 몫은 감히 제 것이 아니었다. 들려온 것에 의하면 한 경위가 휴가까지 내고서 사흘내내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시목의 영정사진은 공무원증에 박힌 사진과 같은 것이었다. 지금의 그와는 달리 살짝 앳되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사진과 눈을 마주치면 당장에라도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아 시선을 아래로 둘 수 밖에 없었다.
기억의 흐름에 못이겨 당기는 미간을 문지르다 말고 책상 서랍 맨 아래칸을 열면 온통 시목에 관한 자료들이 빽빽하다. 그 중 제일 모서리가 닳은 서류철을 꺼내들었다. 사건당시 상황이 담긴 보고서와 부검 결과였다. 사인은 장기손상에 의한 과다출혈. 간이 정확히 찔려 바로 실려갔어도 10분내에 사망했을거라는 의견이 있었다. 입고 있던 옷은 출퇴근 때의 복장과 같고 사라진 물건도 없었다. 격렬한 싸움의 흔적이 그때의 저항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가로등 불도 꺼진 컴컴한 인도에서, 손이 부러지고 몸이 온통 멍이 들때까지. 싸움이 아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는게 더 맞아 보였다.
그럼에도 시신에서 나온 범인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사소한 DNA, 목격자, 새로 나오는 증거도 없다. 완전한 오리무중이었다. 미해결 사건으로 남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경찰에 사적으로 압력을 넣는게 탐탁치 않았으나 재촉하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었다. 이젠 익숙해져버린 한숨을 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이에 박힌 활자들을 뚫어져라 쳐다봤자 내용이 달라지는 일은 없으니까.
내려가는 주차장은 조용했다. 부러 초과근무를 자처하고 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근육이 굳어 쨍한 뒷목을 주무르면서 다가간 차의 잠금을 풀고 운전석 문을 여는데 그 틈새로 무언가 끼워져 있었는지 발치로 종이 조각 하나가 떨어졌다. 검사 일을 하면서 협박 편지니 보복성 택배니 하던 것은 많이 받아본 전적이 있기에 놀라는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요즘 시대에 협박편지라니, 꽤 진부한 방법이다 생각하며 주워 펼치자 그건 편지가 아니었다. 단 한마디였다.
‘뒤.’
본능처럼 그 말에 따라 뒤를 돌아보자 주차장 기둥 뒤로 검은 형체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작은 종이조각은 대충 바지 주머니로 구겨 넣고 그 기둥으로 달렸다. 무슨 위험이 있을지는 나중에 생각해야 할 것만 같았다. 등 뒤로 뻗치는 삐죽한 감각들이 어서 저 형체를 붙잡으라 떠밀고 있었다. 울리는 발소리를 들었는지 검은 옷의 아무개도 주차장의 출구로 달리고 있었다. 이 나이 먹고서 몸을 쓸일이 없어 달리는데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모자란 숨을 느낄 새도 없었다.
주차장 너머 바깥이 보이려는 찰나 거의 몸을 던지다시피 정체불명의 옷깃을 와락 붙잡았다. 한바탕 큰소리가 나며 두개의 몸체가 뒹굴렀다. 안경은 어디로 튕겨져 나갔는지 시야가 흐릿했다. 멀끔했던 옷이 구겨지던 말던 한차례 대거리를 하고 결국엔 위를 점할 수 있었다. 짧은 추격이 허탈한건지 헐떡이는 숨을 쉬는 신원불명의 사내(뒹굴며 얼핏 들은 신음소리는 명확한 남자의 목소리였다.)는 더 이상의 저항이 없었다. 눌러 쓴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변장은 수상하다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하지만 그 틈새로 보이는 눈이 이상하게도 낯선 느낌이 아니었다.
"누구야, 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점차 안정되어가는 숨소리만 빈 주차장에 울렸을 뿐이었다. 이 순간에 생각나는 얼굴은 왜 하필 황시목인지 모르겠다. 신고 전화를 하려 핸드폰을 꺼내드는 대신 얼굴을 가린 것들을 치우려 손을 뻗었다. 그러자 버둥거림이 심해졌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밑에 깔린 몸체를 힘있게 짓누르고 감싸여져 있는 것들을 전부 벗겨냈다.
땀에 젖어 척척하게 눌러붙은 머리칼은 아무렇게나 이마에 달라붙어 있다. 마스크로 얼굴을 오래 가리고 있었는지 코와 뺨은 불그스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식지 못한 땀방울이 콧망울을 타고 인중께로 떨어졌다. 멈췄던 시간이 흐르는 기분이다. 흐르던 피가 식는다는 표현을 이런때 써야하는건가. 누르고 있던 몸에서 힘이 빠졌다.
"..황시목."
불과 몇분 전에 부검 사진으로 본 인물이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그것도 제게서 도망치다 잡힌 채로.
"이유가 뭐야."
황망한 정신을 겨우겨우 붙들고 차에 끌어다 앉히긴 했지만 당췌 정리가 되질 않았다. 얼굴이 똑같은 사람이 존재한다고? 그것도 며칠 전에 죽은 사람 얼굴을 하고? 꿈인가, 현실인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너는 대체 누구고, 왜 여기에 있는거야. 죽은 사람은 진짜 황시목이야? 헤어지자 일갈한 황시목은 죽은 사람이야, 아니면 너야?
차 핸들에 이마를 박고서 가만히 있다가 이를 한번 갈고는 시동을 켰다. 계속 여기에 있을 수는 없으니 차라리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시시콜콜 따져묻는게 낫겠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목적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길이 보이는 대로 신호가 이끄는대로 차를 끌었다. 아마도 옆좌석의 존재를 잠깐이라도 잊어보려 발악을 하는 것이리라.
어딘지도 모를 도로가 나오자 반충동적으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와 동시에 시끄럽게 하늘에서 물이 떨어졌다. 유리를 크게 때리는 소리가 마치 현실을 직시하라 종용하는 것만 같았다. 핸들을 쥔 손만 노려보고 있는데 드디어 제가 알던 목소리가 들렸다.
"풀어야 할 이야기가 깁니다."
느리게 고개를 옆으로해 바라본 시목은 지친 얼굴이었다. 어째 더 말라보였다. 검은색 바람막이 점퍼를 목끝까지 올려입은 행색은 영락없이 도망치는 사람 꼴과 비슷했다. 순간 팔을 뻗어 희게 질린 그 뺨에 손끝을 살짝 대보았다. 시목은 약간 놀란 듯 보였으나 가만히 있었다. 느껴지는 촉감은 정말 사람의 피부였다. 차갑지도 않았다.
"내가 알던, 황시목이 맞는거야?"
"..믿기 어려우시겠지만요."
비로소 제대로 마주한 얼굴은 눈물이 보이지 않았지만 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알 수 있었다. 어떠한 이해관계도 상관없이 직감적으로. 너는 내가 마음에 두었던 황시목이다. 죽은 것도 사라진 것도 아닌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 황시목. 말없이 끌어안아 버렸다. 묻고 싶은 이유가 수십가지였지만 지금은 그냥, 이렇게만 있고 싶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내리는 소나기가 이 모습을 감춰주길 바라는 것 처럼.
찝찝했던 몸을 씻고 새로 옷을 갈아입은 채 다시 시목을 마주했다. 약간 덜 마른 머리를 한 채 물잔을 입에 가져다 대는 시목은 평소의 모습과 같아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니까.."
"쌍둥이요."
덤덤하게 입에서 나온 말들은 꽤 충격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황시목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이라는 거고 사건 발생 3일전부터 서로 신분을 바꿔 생활하던 중이란 것이었다.
"…어머니도 한패다 그 소리처럼 들려."
"도와주시긴 했죠.."
"왜 그렇게까지 해야했던거야?"
"그 애는 제 도움을 바랬고 저는 도움을 줬을 뿐입니다. ..어머니가 부탁하신 것도 있고."
"동생 좀 도와달라고?"
"..네."
시목의 모친은 쌍둥이를 낳았지만 부모는 둘을 전부 키울 여력이 없었기에 아이 하나만을 선택해야했다. 한쪽은 자연스레 보육원으로 들어갔고 친부 몰래 어머니와만 연락을 하고 있었단 소리였다. 그러다 그곳에서 나올 나이가 되면서 보육원과 친모에게서 자립할 만한 돈을 받고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는 얘기.
"그런데 최근 다시 연락을 해왔던 겁니다. 돈이 필요하다면서요."
동생은 어떻게 알았는지 바뀐 친모의 연락처로 먼저 전화를 해 둘이 먼저 만남을 가졌다. 동생의 목적은 돈이었고 만날 때마다 요구하는 액수는 점차 커져 결국 시목에게까지 전부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는 수준에까지 닿아버렸다. 존재조차 몰랐던 형이 검사라는 말을 듣자 동생은 약간 수그러든 자세를 보였으나 금세 당신이 누리고 산 것을 난 그러지 못했으니 불공평하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시목은 그런 말을 하는 동생에게서 무언가 다급함을 캐치해냈다. 약간 더듬는 투와 식은땀. 두 팔을 팔짱을 꼈다 풀었다 하면서 가만히 두질 못했다. 보다못한 시목이 일갈하니 도박을 잘못해 사채업자에게 쫒기고 있다며 전부 털어놓았다는 것이었다. 급한대로 시목은 동생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었고 도망칠 루트를 구할 시간을 벌어야했다.
"그런데 지검으로 출근은 해야하니 시간은 없고 데드라인은 다가오고,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신분 바꿔치기군."
"적어도 저로 위장하고 있으면 쫒기진 않을테니까요."
"헤어지잔 이유도 그것 때문일테지."
"….죄송합니다."
"그 이유가 최소한 관계의 문제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선배님을 끌어들일 만한게 아니었습니다."
"황시목이 성격상 어떻게 나한테까지 손벌리려고 했겠어. 그래도 좀 섭섭은 하네. 좋은 카드를 쥐고 있는데도 굳이 덮어놓은 걸 보면."
"사람을 이용하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문제에요."
"이미 사람들은 네 술수에 놀아날대로 놀아났어. 장례식장에서 의 한 경위를 봤다면 그런 말이 안나올텐데."
"…선배님은요, 힘드셨어요?"
"그래. 무척이나."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시목은 시선을 아래에 두고 있었다. 보다못해 일어나 술을 모아놓은 장식장으로 향했다. 그중에 하나를 꺼내와 잔을 채우고 저와 시목 앞에 한잔 씩 두고서 앉아 먼저 한입에 액체를 털어넣고 술냄새 섞인 한숨을 늘어놓았다.
"잠이나 푹 자려면 좀 마셔둬. 신경 꽤나 날카로워 보이는데."
시목은 술잔 가장자리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섭섭하다. 그래, 그 감정이었다. 빚을 갚아주고 도망칠 방편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뻔히 옆에 있는데도 시목은 헤어지는 것을 택했다. 자신은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었을까.
"동생을 죽인건 그 사채업자들입니다."
"뭐?"
"제가 선배님을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했던건, 동생처럼 될까봐였습니다. 그들은 동생이 저인줄 알고 이미 동생을 빼돌렸다고 생각해 보복한겁니다."
"…그걸 봤나?"
"제가 유일한 목격자일 겁니다. 배편 같은 것을 알아보다 돌아가는 길이었으니까요. 그들은 계획적으로 가로등을 끄고 동생을 기다렸습니다. 도망칠 루트까지 정해놓은 것 같았습니다. 흩어지는 모양이 맞춰놓은 듯 질서정연 했습니다. 그정도로 치밀합니다. 증거조차 남기지 않아요."
"사채업자들에 대해서 어디까지 조사한거야?"
"사람을 죽일 정도니 뒷배가 든든해야 하겠죠. 정확한건 저도 아직.."
"고위급 인사의 뒤처리반이라도 된다..그건가."
"비슷합니다."
"뒷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네 정체도 꺼내야할거고. 그 살인자 집단까지 잡아야한다, 스케일이 점점 커지네…"
"..그래서 찾아온겁니다."
"끌어들이기 싫다더니?"
"꺼내기 싫은 수 였습니다만 말씀드렸다시피 좋은 방법이 없었습니다."
"네가 증언 해야해. 살해당한 검사가 살아돌아왔다고 떠들썩 할거야. 물론 일반인을 검찰내에 들여보낸 죄도 묻게 될거고. 작게는 정직, 크게는 파면."
"알고 있습니다."
"..징계는 최대한 내 선에서 막아보기로 하고,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지. 많이 피곤해 보여."
자리에서 일어나 시목에게 빈방을 내어주었다. 무언가 질문을 건네는 눈빛이었지만 애써 모른척 하며 안방으로 가 자리에 누웠다. 일어난 일들이 전부 현실감이 없다. 아침이 오면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순간 겁이 났다. 사람을 잃는 기분 따위 다시는 느껴보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아 두려움을 떨치려 해봐도 뒤척여질 뿐 잠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엔 일어나 시목의 방으로 향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게 연 문 틈새로 등진 채 모로 누워있는 형상이 보였다. 천천히 다가가 옆 가에 앉으니 눈을 감고 고른 숨만 내뱉고 있었다. 손가락을 코 밑에 대자 더운 호흡이 느껴졌다. 살아있다. 황시목은 살아있다. 손을 거두고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손이 잡혀 당겨졌다.
"자는 줄 알았는데."
"저 살아있는거 맞습니다."
"..알아. 하지만 트라우마 라는건 그렇게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제가 무모했어요."
웃음이 나왔다. 이것이 황시목 나름대로의 사과 방식일 것이다. 손을 마주 잡아주고 다시 옆에 걸터 앉았다.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주니 시선이 따라왔다. 해가 밝아도 살아 숨쉬는 너를 만나고 싶다. 잇새를 세게 한번 깨물다 고개를 숙여 이마 위에 작게 입맞춤을 내렸다.
"잘 자. 어디로 도망갈 생각 말고."
끄덕이는 얼굴을 뒤로 해 방을 나섰다. 이제부터 할 일이 많다. 억지로라도 자둬야했다. 오늘 이후로 편히 누워 잘 수 있는 날은 꽤 나중에 올테니.
황시목은 현재 유일한 목격자이고 증인이며, 생존자였다. 최후의 순간까지 숨기다 드러내야할 히든카드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건 정황증거 뿐이다. 오히려 그들이 시목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도 있었다. 머리를 맞대며 그들을 이끌어낼 방법을 찾았지만 적당한 것이 없었다.
"..제가 미끼가 되는건요?"
"안돼."
"저들은 이미 제가 쌍둥이인걸 압니다. 아마 나머지 한쪽도 찾으려고 혈안이 되있을거에요. 제가 나서는게 가장 쉽습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이딴 말 할거면 관둬. 난 절대 못그래."
"이젠 저 혼자 하는게 아니잖습니까. 선배님 계시잖아요."
시목은 완강했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상황 속에서 널 두번이나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해도 고집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시목을 전면에 내보이는 수 밖에 없었다. 단 하나 뿐인 패. 기회도 한번 뿐이다. 그들을 현행범으로 잡기 위해선 경찰의 협조가 필요해 내키진 않았으나 한 경위를 따로 만나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한 경위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아마 화가 난거겠지.
얘기를 끝마치자마자 시목이 앉아있던 가게로 들어와 옆에 앉았다. 얼굴을 가린 것을 거두니 한 경위는 그제서야 원망의 말들을 쏟아냈다. 자리를 피해주는게 맞다고 생각해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차에 기대 기다리고 있으니 곧 둘이 같이 나와 앞에 섰다.
"경찰의 의견은?"
"장소만 알려주시면 저 혼자라도 잠복 들어갈겁니다. 황 검사님 그렇게 되는거 다신 못보겠으니까."
"동감."
서로의 의견을 다시 다지고서 흩어졌다. 시목은 계획대로 존재의 노출을 해야했기에 흥신소나 도박장, 유흥가들을 전전하며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끄나풀 중 누군가가 시목을 본다면 바로 윗선에 보고를 할테니. 물론 사고의 방지를 위해 너무 오래 혼자 걷거나 늦은 시간까지 있는 것은 피했다. 그러길 며칠이 지났을까 시목의 뒤에 미행이 따라붙었다. 거사가 멀지 않은 것이다.
날을 정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으슥한 골목을 하나 알아두었다. 근처에서 한 경위가 같은 팀의 경찰 둘과 대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저는, 시목의 바로 뒤를 지키기로 했다. 시목의 몸 위에 방검복을 입혀주고서 머리를 한번 쓸었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되도 넌 멀쩡히 있을거야."
"그럴겁니다. 그렇게 만들어야죠."
"나한테 하는 말이기도 해."
힘겹게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였다. 당장에라도 집에 가둬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렇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자정이 다 된 시각에 맞춰 미행이 붙던 거리에 내렸다. 시목을 먼저 보내고 저는 바로 건너편 길을 따라 걸었다. 거리의 중간쯤 갔을까 꼬리가 생겼다. 눈짓을 주고받고 시목이 골목을 향해 갔다. 아니나다를까 미행도 그쪽으로 따라붙었고 처음보는 사내 서넛이 나타나 방향을 같이 하기 시작했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시목의 뒷모습을 빠르게 훑으면서 가는 발이 조금이라도 긴장이 풀리면 바로 뜀박질을 할 것 같았다. 어둑한 골목 그림자너머로 시목을 쫒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골목의 끝에는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을거였다. 그래도 등줄기를 스치는 오싹함이 소름끼쳤다. 급한 걸음을 한 채 골목안쪽으로 뛰어들듯 들어갔다. 깊숙히 갈수록 무언가 싸우는 소리 같은게 들리는 것도 같았다. 미친 것처럼 뛰는 숨을 쉬면서 뛰는 것을 멈추니 인질극 한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칼 버려!"
"오면 목 따버린다고 했어!"
방검복으로도 감싸지 못한 목줄기에서는 이미 핏자국이 비치고 있었다. 통증 탓인지 시목의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잘 버티는 중인 것 같았다 미행 붙던 꼬리는 도망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나머지는 경찰과 싸움을 벌였는지 길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리치는것이 시끄러웠다. 머리와 귀가 웅웅 울리는 와중에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시목의 얼굴만 보였다. 다시는 잃지 않겠다고 했는데.. 다시는.
순간 골목 구석에 버려진 콘크리트 벽돌따위가 눈에 들어왔다. 인질범은 경찰을 상대하느라 제 존재는 관심 외일 것이다. 어둔 그림자 안으로 몸을 숙였다. 반정도가 깨진 벽돌은 묵직했고 한손에 온전히 들어왔다. 이거라면 던질 수 있다. 손을 맞춰 칼을 떨구게 하던지 머리를 맞춰 기절 시키던지 둘중에 하나. 저 덩치가 몸을 좀 그만 움직였으면 좋겠는데.
팔을 크게 휘둘러 던졌다. 퍽- 소리를 내면서 벽돌은 인질범의 팔꿈치를 맞췄다.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면소 인질범이 시목에게서 칼을 치웠고 경찰 셋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시목은 바닥을 구르면서 그들에게 떨어졌다. 먼지투성이가 된 시목을 받아들어 상처를 살폈다. 다행히 피가 맺혀 가늘게 흐르기만 할 뿐 깊지는 않았다. 안도와 같은 숨을 쉬면서 시목을 품에 안았다. 드디어, 모두 끝났다.
재판은 속전속결이었다. 혈육을 잃은 검사의 함정수사. 매스컴이 들썩였다. 복직은 미뤄두고서 재판에 신문사에 시목은 이리저리 끌려다녀야했다. 물론 그 다음은 징계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정직 먹었습니다."
"파면은 아니잖아."
"6개월이요.."
"휴가라고 생각해."
"최대한 막아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뒷배 있다고 뻗대는거야?"
시목의 목에는 결국 가느다란 흉터가 남았다. 그걸 보면 인질로 잡혀있던 그 광경이 떠올랐지만, 이내 시목이 손을 잡아오면 흩어졌다. 시목과 함께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잃지 않았다. 너는 옆에 있다, 여전히.
"6개월 동안 얌전히 있기 약속해."
"제가 다니면 어딜 다녀요."
"험한 거 생각도 말고."
"네…"
손가락을 엉겨 잡았다. 놓기가 싫었다. 온기를 느끼기로 했다. 너를 두고 어디도 가지 않겠다고 수도 없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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