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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8월 13일
  • 2분 분량

시목동재

<네가 왜 여기서 자고 가요>


고밍 (트위터 @goming_313)


“저거 혹시 가져갈 수 있을까요?”

“아, 네. 대신 가져가시려면 서류 하나 작성하셔야 하는데 작성하시겠어요?”

동재가 가져온 사랑니의 상태는 썩 보기 좋지 않았다. 조각낸 사랑니가 보기 좋을 리 없었다. 이걸 가져와서 뭘 어떻게 하겠다고 가져왔는지 바라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왔다. 그냥 가져가면 위법이래서 서류까지 작성했더니 집에 와서 보고 후회를 꽤 많이 하는 중이다. 어차피 의료폐기물이라던데 이걸 왜 가져 와서는.

“쯧”

거울 속 퉁퉁 부은 자신의 얼굴과 조각난 사랑니를 번갈아 보던 동재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상 밖으로 비가 많이 온다. 그저 한두 시간 내리고 말 소나기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사랑니를 빼게 된 것도 서러워서 일부러 화창한 날을 찾아 예약했다. 하지만 일기예보가 보란 듯이 빗나갈 줄은 몰랐다. 평소라면 쓰지도 않았을 월차까지 냈건만. 인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 나이에 사랑니를 뺐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처음 통증을 느꼈을 때, 주변에 물어보기에는 이상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40대에 사랑니가 났습니다.’라는 제목이 꽤 흥미로웠는지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사랑해서 사랑니가 나는 거라느니 뭐니 동재의 신경을 건드리는 댓글이 많아 얼마 가지 않아 그 글은 삭제했지만.

음식을 먹을 때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통증이 심해 결국 치과에 가 이를 뽑기로 했었다. 이를 뽑기로 예약하고 나왔을 때 그깟 사랑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뽑고 와서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치과 간 날에 그냥 바로 뽑아버릴걸. 하필 또 이렇게 비가 오니 기분을 풀래도 쉽게 풀어질 수가 없었다.

“아침에는 화창하더니 갑자기 이렇게 비가 와. 하필 오늘.”

끙. 치과에서 맞은 마취 효과가 떨어진 것 같았다. 잇몸 깊은 곳에서부터 슬금슬금 올라오는 고통이 꽤 괴로웠다. 자연스레 미간을 찌푸린 동재는 받아온 진통제를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치과에서부터 가져온 아이스팩이 녹아 조금씩 물이 나왔지만, 집에 얼려둔 얼음이 따로 없어 볼에 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아픈데, 비가 오고, 습하고, 아이스팩에서 흘러내리는 물까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집으로 올 때는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진다. 그 정도가 심해 뿌옇게 보여 안개로도 착각할 판이었다. 아스팔트들을 때리는 빗방울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그마저도 잠시일 뿐 다시 미간이 찌푸려진다.

‘딩동-’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동재는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눈이 번뜩 떠졌다. 택배 시킨 것도 없고 이 시간에 집에 올 사람이 있을 리가. 인터폰을 통해 보이는 얼굴이….

“... 황시목?”

쟤가 왜 여기에. 전혀 예상도 못 한 인물이다. 황시목이 어떻게 제집 주소를 알고 있는지는 나중이었다.

“뭐야? 네가 왜 우리 집을 와?”

“그, 아프다고 하셔서요. 근데 얼굴이, 누구한테 맞으셨습니까?”

“누구한테 맞은 거 아니거든. 그리고 누가 나 아프대?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해서 괜히 황시목을 훑어보게 된다. 손에 들려있는 저 죽은 뭐야. 오다가 산 건가. 진짜 내가 아프다고 해서 죽을 사 왔다고? 믿기지 않는다. 갑자기 무슨….

“월차 내신 거요. 병원 가셔서 무슨 치료를 하신다길래 아프신 줄 알았습니다만. 일단 얼굴은, 네. 아파 보이시네요.”

“이 자식이 진짜. 이거 그, 맞은 게 아니라 사랑니가 너무 아파서 그래서 뺀 거야.”

끙.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해버렸다. 사랑니 뺀 게 뭐 대수라고 말하는 게 이렇게 싫은지. 왜인지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쪽팔림에 동재는 아랫입술을 한 번 깨물고 한숨을 쉰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일단 제가 걱정되어서 집까지 찾아온 사람을 대차게 쫓아낼 수는 없었기에 결국 황시목을 집 안으로 들였다.

“커피 한 잔만 마시고 가. 비 오는데 바로 내쫓는 건 아닌 거 같아서 들어오라고 한 거니까.”

“죽 드시는 거 보고 가겠습니다. 커피도 마시고요.”

“그냥 자고 간다고 하지그래. 연락 없이 찾아와놓고는 제멋대로야 아주.”

“네. 그럼 자고 가겠습니다.”

그래. 어쩐지 비가 오더라니. 재수가 없어도 더럽게 없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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