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8월 13일
- 6분 분량
시목여진
<Take #111>
우리 (트위터 @4WO0_)
은은한 재즈 음악이 흐르는 카페 안은 분주함으로 가득했다. 커피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와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가끔 터지는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인 공간. 그 속에서 유일하게 정적인 창문 옆자리. 그곳에는 시목과 여진이 마주 앉아있었다. 김이 더 피어오르지 않는 두 개의 머그잔은 그들의 대화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것을 가늠케 했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는 거리가 훤히 내다보였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옷가지와 나뭇가지가 보이지 않는 거센 바람에 흔들렸고, 머그잔 속 커피가 가득할 때 길을 비추던 햇빛은 먹구름에 가려 힘을 잃은 지 오래였다. 어느새 무늬처럼 창문의 유리 면을 빼곡히 채운 물방울, 그중 몇이 창문을 톡 치니 힘없이 밑으로 흘러내렸다.
미지근해진 커피를 마저 목구멍에 넘긴 여진은 옷매무새를 정돈한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시목에게 짧은 인사를 건넸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저도요.”
“아, 그럼-”
같이 나가요. 라고 채 말하기도 전에 옆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저도 여진 씨 좋아합니다.”
시목의 목소리.
“네?”
순간 반사적으로 여진의 고개가 시목 쪽으로 꺾였다. 자신의 고백을 듣고 난 후 내내 무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시목이었다. 그런 그의 반응을 거절로 넘겨짚은 여진은 더 민망해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자리를 뜰 참이었다. 그런 그녀를 돌려세운 그의 한마디. 그녀의 ‘좋아해요’에 대한 약간은 늦은 그의 답변. 시목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여진의 반응은, 동그랗게 커진 눈과 시목 쪽으로 쭉 빼진 목, 그리고 끝이 올라간 되물음.
시목은 제 입꼬리를 올렸다. 웃는 법을 잊은 적이 없는 듯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감정을 담을 줄 모르는 제 얼굴에 행복감이라는 것을 욱여넣으려 얼마나 연습했을까. 그의 광대가 둥글게 부풀었도다. 오래 유지되는 웃음에 단련되지 않은 근육이 경련하기 시작하면서 호선을 그리며 휜 눈매와 입매가 잘게 떨려왔다. 시목은 손을 들어 제 얼얼한 광대를 매만졌다. 여전히 웃음을 띤 채. 별안간 다물어져 있던 그의 입이 벌어졌다. 정갈한 잇새로 뱉어지는 짧은 호흡들은 음소거된 웃음소리 같이 들렸다. 점점 더 크게 벌어지던 입은 이내 두 손을 모두 올려 막아야 할 만큼 넓어졌다. 하하하하. 마침내 터져 나온 웃음. 웃음소리와 같은 박자로 위아래 들썩이는 그의 어깨. 그의 목젖이 천장을 향하게 꺾였다. 이마를 덮던 머리칼은 중력으로 인해 들춰졌다. 웃음에 삼켜져 버린 듯한 그는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점점 더 가라앉았다. 얼마 가지 않아 그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쿵- 소리와 함께.
take #111
"아직 잘 간직하고 있죠?"
"뭐를요?"
"내가 만날 때마다 준 거. 아니이~ 전에 보니까 방 안에 고이 모셔뒀던데, 아직도 그래요?”
"모셔둔 건 아닌데요."
"버린 것도 아니죠?"
"안 버렸습니다."
"다행이다. 여기, 이건 오늘 꺼."
"매번 안 이러셔도-"
"스읍. 부담 갖지 말구 받으세용."
"네."
"어때요? 꽤 닮았죠. 나 요즘 실력이 계속 느는 거 같아."
"…네."
"솔직히 말해줘요."
"…"
"치."
"…"
"…어, 어, 시목 씨 또 웃었다!”
반쯤 떠진 눈에 흐릿하게 보이는 익숙한 바닥재. 으…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에 옅은 신음이 나왔다. 얼얼한 뒤통수를 매만지려다 주먹을 쥔 제 손을 본 시목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주먹을 펴보니 한껏 구겨진 종잇조각 하나가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었다. 다른 손으로 바닥을 지탱해 윗몸을 일으킨 시목은 휘청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겨우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터덜터덜 안방으로 걸어갔다. 고요한 거실에는 그의 조금 거친 숨소리, 그리고 바닥과 마찰하는 그의 발소리만이 들려왔다.
책상 모퉁이에 작은 산을 만든 종이 더미. 그 종이들은 하나같이 구김 자국이 가득했다. 시목은 그 위에 손에 쥐어져 있던 조각을 떨어트렸다. 그의 손을 떠나 아슬아슬하게 모서리에 착지한 종이는 조금씩 기우뚱하더니 결국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소리를 들은 시목은 몸을 숙여 종이를 다시 집었다. 그리고 고개를 저 너머로 둔 채 책상을 찾아 팔을 허우적거렸다. 헤매던 팔은 종이를 제자리에 놓으려는 그의 의지와는 달리 책상을 스쳐 쌓여있던 종잇조각들을 바닥에 흩뿌렸다. 무심코 바닥에 흩어져있는 종이들은 본 시목은, 그 속의 자신의 웃음에 순간 숨이 턱 막혀와 문을 닫고 도로 거실로 나왔다.
애초에 태워버렸어야 했다. 태워버린다.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한 시목은 종이의 한 끝자락을 집고 라이터를 켰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이 종이의 모서리에 닿자마자 화르륵 타오르는 종이와 같이 온몸을 휘감싸는 고통에 시목은 참지 못하고 종이를 부채질해 불을 도로 껐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태우려는 시도만 수십번. 그 과정에서 단 1그램의 잿더미도 남기지 못한 채 타다 만 종이들 또한 수십장. 제대로 타지도 못한, 그렇다고 온전한 종잇조각도 아닌, 불완전한 마무리 또는 시작이었다. 마치 두 사람과 같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재는 시목에게 밟혀 그가 가는 곳마다 거뭇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 발자취들은 시목이 애써 없애려고 했던 흔적이었다. 그가 놓으려고 할 때마다 도로 붙잡게 되는 흔적. 기억. 추억. 좋았던 날들.
"한 경감님이… 사고를 당하셨대요. 저도 지금 뉴스 보고 알았어요."
주말인데도 걸려온 실무관의 전화를 받았을 때, 전화기 너머 들려온 말이었다. 그 문장이 끝나자마자 시목은 바로 통화를 종료시키고, 망설임 없이 구석의 리모컨에 손을 뻗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사망했습니다. 5중 추돌 사고로, 빗길에 미끄러진 차랑 하나가 돌진해오는 5톤 트럭과-]
'속보'라는 빨간 사각형이 구석에 떠 있었다. 빠르게 화면을 흩으며 상황 파악을 마친 시목은 그대로 텔레비전의 전원을 껐다. 화면에 떠 있던 익숙한 얼굴. 비현실적이지만 그렇다고 말이 안 되는 건 아닌, 그래서 더 끔찍한 현실. 차분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시목의 안에서는 모든 게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빠르게 적셔오는 충격은 곧 질리는 이명 소리와 고통으로 찾아왔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종일 쓰러지고 정신이 드는 것을 반복하던 시목은 3일째가 되던 날 장례식장을 찾았다. 발을 들였을 때, 주변에서 새된 속삭임이 연달아 들려왔다. 아마도 제 이름을 말하는 거겠지. 상관없었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흐르는 뒷말, 멸시, 루머. 무엇이 되었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가 두려운 건 지금의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 현실은, 미처 고개를 들고 있지 못하는 시목 맞은 편, 국화꽃 더미 너머 웃고 있는 여진이었다.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향을 꽂고, 영정 앞에서 절을 하고, 상주에게 절을 해야 했다. 부조금을 낸 후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을 나서면 됐다. 입술을 꽉 물고 고개를 들려는 순간 그의 속에서 무언가가 들끓어왔다. 마치 토할 것 같이 역겨운 느낌. 우웁- 목 끝에서 느껴지는 시큼함에 시목은 입을 막은 채 몸을 돌려 장례식장을 나왔다.
매년 교통사고 사망자 수천 명. 비가 오는 날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백 명. 그중 한 명. 한여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망 사건과 죽음을 다뤘던 시목이었다. 죽음과 항상 가까이 있으면서 왜 미처 깨닫지 못했을까, 죽음 따위는 예측이 불가하다고. 왜 의심치 않았을까.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을 거란 믿음을, 그 오만함을. 한여진. 시목에게는 단 하나뿐인 그녀도 결국은 마음과 몸에 상처를 입는 생명체였고, 죽음 앞에선 그저 힘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니 살다간 수많은 사람 중 하나뿐이었다.
여진을 죽인 건 시목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거절이, 그 탓에 오래 가지 못한 그들의 만남이, 다 비워지지 못한 그의 머그잔이, 너무 일찍이 비워진 그녀의 머그잔이, 비가 그치기 전 여진을 가게에서 나서게 한 자신이, 그가, 여진을 죽였다.
그 끝을 애써 부정하려 수십번도 더 그날의 기억을 되돌려봤다. 몇십번 재생한 후 늘어져 버린 머릿속 테이프는 도로 되감고, 너덜너덜 해어진 테이프 속 끊어진 곳은 또다시 이어붙인 후 재생했다. 정말로 자신의 탓이었을까. 증거물을 분석하듯이 그날의 모든 것을 따져봤다. 만약에 그녀가 차 열쇠를 두고 갔다면. 만약에 그가 여진의 커피를 쏟았다면. 만약 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약'이라는 가정을 두고 상상하는 게 그저 헛된 망상인 줄을 알면서도 그는 그만두지 못했다.
잘못된 끝을 바로잡으려 시목이 택한 방법은 머릿속 재촬영이었다. 그 속에서 그는 감독이나 연출가 없이 홀로 상대역을 상상하며 끊임없이 같은 장면을, 매번 똑같이 주어진 설정에 몇십 가지의 다른 대사들을 뱉으며 연기했다.
테이크 #2.
‘좋아해요.’
‘네?’
다시. 테이크 #3.
‘좋아해요.’
‘잘 못 들었습니다.’
다시. 테이크 #4.
‘좋아해요.’
‘왜요?’
다시. 테이크 #5.
테이크 #111.
‘저도요. 저도 여진 씨 좋아합니다.’
여진을 다시 자리에 앉히고, 그녀에게 숨겼던 자신의 진심까지 전할 수 있는, 시목이 가장 완벽한 답변을 생각해낼 때까지 필요했던 테이크는 총 111번이었다.
그가 끊임없이 그날의 기억을 되풀이하는 것은 죄책감에서 탈출하려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그 속에 자신을 가둔 채 벌하기 위해서였을까. 뭐가 되었든 바뀌는 건 없었다. 원테이크인 인생에서 엔지(NG)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미 상영된 지나간 장면은 다시 찍지 못했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시목은 그럼에도 자신의 회피책을 놓지 못했다.
여진은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시목과 달리 활동영역이 넓은 사람이었던 그녀는 피해자의 가족을 집에 들이고 동료 경찰보다는 억울한 피해자의 손을 들어줄 만큼, 정이 많고 사람을 보듬어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여진이 그에게 남기고 간 건 웃음이었다. 두 사람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여진은 자신과 시목을 '우리'라 칭했었다. 평생 혼자로 지낼 것을 확신했던 시목은 처음 느껴보는 진심 어린 소속감에 웃음이 났었다. 여진은 시목을 웃게 했다. 그의 입꼬리를 잡아 올리는 대신 그가 스스로 웃는 법을, 그러려면 느껴야 하는 것을 깨우쳐줬다.
‘검사님두 웃으니깐 예쁘네.’
만날 때마다 여진이 그의 손에 쥐여주던 낙서에는 여진이 바라본 시목이 그려져 있었다. 웃고 있는 시목. 뾰로통한 시목. 감정이 풍부한 시목. 그녀의 시선이 담긴 종잇조각들은 그녀를 기억할 수 있어 소중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를 옭아매는 족쇄와도 같았다. 여진을 잊지 못하게 끊임없이 그의 기억을 되살리는 장치였다. 여진을 생각할 때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그녀의 끝이었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을 때면 어김없이 시목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테이크가 찍히고 있었다. 그곳은 그녀가 죽은 후 웃음을 완전히 잃어버린 시목이 유일하게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서 종종 그는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에 먹혀버려 정신을 잃곤 했다.
여진과 쌓았던 추억들은 모두 아픔으로 돌아왔다. 비가 오는 날이면, 머그잔에서 풍겨왔던 것과 같은 커피 향이 맡아질 때면, 잠이 오지 않는 밤 문득 카모마일 차가 떠오를 때면, 퇴근길 길을 돌아가는 것을 잊어 그 포장마차를 지나칠 때면. 그때마다 시목은 그 자리에서 굳은 채 숨이 넘어갈 때까지 헛구역질하다 이명과 두통에 휩싸여 쓰러졌다.
여진이 남긴 건 많지 않았다. 그녀는 시목에 주었던 것들을 도로 낚아채고, 더 큰 아픔을 안겨준 후 그를 떠났다.
흐릿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하늘에 대고 시목은 작게 중얼거렸다. 울지마. 그의 말을 들을 리 없는 하늘은 툭- 시목의 손바닥 위에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렸다. 곧이어 쏟아져 내리는 비. 툭- 투둑- 시목의 눈가에 닿은 빗방울은 그의 체온으로 뜨겁게 데워졌다. 그 후 그의 볼을 타고 흐르다 그대로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산 없이 다시 맞는 비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천으로 가려지지 않은 얼굴과 손을 에는 듯한 비에 피부가 고통으로 얼얼해져 갔다. 어느새 흠뻑 젖어가는 머리. 시목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주변을 에워싸는 물소리는 마치 그가 샤워부스 안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끔 했다.
아무리 강한 물줄기에도 씻겨 내려가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빗소리는 여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느껴지지 않는 빗방울에 시목은 느리게 눈을 떴다. 여진일까. 그가 비를 맞는다는 것을 의식조차 못 하면서 살아갈 때, 비는 맞는 게 아니라며 우산을 씌어줬던 게 그녀였다.
“시목 씨, 거기서 뭐 해요? 얼른 안에 들어가요.”
“여진 씨는요.”
“시목 씨랑 같이 가야죠. 우리 얼른 들어가요.”
시목은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쯤 떠진 눈은 그대로 다시 감겼다. 그의 볼 위로는 살을 베는 빗방울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빗줄기가 점점 더 거세져 왔다. 시목의 주변이 마치 뿌연 안개가 낀 듯이 새하얘졌다. 시목은 한 손으로 가방을 더듬었다. 이미 흠뻑 젖어버린 가방의 지퍼를 열고 손을 넣어 종이 서류 사이를 헤집었다. 뭉툭한 것이 잡힐 때까지. 구져지고 젖고 찢긴 종이 몇 장과 함께 가방 안에서 건져 올려진 것은 우산이었다. 시목은 눈꺼풀에 맺힌 빗방울을 비벼 닦아낸 후 우산이 펴지는 곳을 눌렀다. 그리고는 튕기듯이 펴진 우산을 썼다. 아픔이 가셨다. 시목은 물먹은 솜마냥 무거워진 제 구두 한 짝을 천천히 내디뎠다. 보이지 않는 앞을 향해.
어쩌면, 여진은 시목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 많은 것들을 그에게 남겨준 것일지도.
먼저 합작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진과 그녀의 우산 없이 또다시 비를 맞으며 고독해진 시목이 겪는 아픔에 대해 써봤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비밀의 숲2 달려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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