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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8월 13일
  • 4분 분량

시목여진

<mr.chuu>


밀 (트위터 @himomil)


골 아파.... 아 그거 알아요? 고라파덕이라는 포켓몬이 있는데 얘가 오리거든요. 근데 맨날 골이 아파서 고라파덕이래요. 이름 너무 잘 지었지.

포켓몬이요.

네네, 포켓몬. 아 혹시 모르나? 나보다 다섯 살 위면..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때였나 그때 티비에서 봤으니까. 혹시 어릴 때 티비 안 봤어요? 요즘 안 보는 거야 아는데.

네. 잘 안 봤네요.

흠, 그럼 기다려봐요. 이렇게 생긴 건데.

여자가 익숙한 듯 갈색 냅킨 한 장 뽑아 볼펜을 끄적이니, 남자는 조금 귀찮은 내색을 보였다. 내색이래 봤자 눈썹꼬리를 살짝 내리는 게 전부라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눈치채지 못할 미묘한 표정 변화였다. 뾰족뾰족한 손을 머리 위로 감싼, 아마도 오리일 것이라 추정되는 그림을 그려 상대에게 내밀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입술을 쭉 당기며 유감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포기하지 않고 빈 모퉁이에 볼펜을 그어댄다.

얘도 모르나? 이거 진짜 유명한 건데. 모를 수가 없는데. 애들 숟가락 젓가락에 다 그려져 있고, 거의 그냥 전기 공격의 대명산데. 할리우드에서 영화로도 제작된 거라고 이게.

남자는 갈색 종이 위로 그려진 두 뿔이 달린 형태를 보고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여자가 그를 캐치하고 에헤이, 하고 볼멘소리를 낸다.

나 진짜 똑같이 그렸어요. 이렇게 생긴 거라니까?

안 닮았다고는 안 했는데요. 애초에 뭔지 모르니까요.

하, 참. 표정도 말이거든요. 의사소통의 하나라구요.

그러자 남자는 코로 날숨을 얕게 뱉었다.

그래서 이게 뭡니까.

피카츄요.

남자가 빠르게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여자는 그가 못 알아들은 줄 알고 됐다며 손사래 쳤다. 그제야 삼천포로 빠져버린 테마에 조금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 탓이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이, 됐어요.... 아무튼 그래서 골이 아프다고요. 아 진짜, 권 경위님 대체 언제까지 쉬실 참이야. 가벼운 접촉사고로 상대 쪽이 나일론으로 누워버렸다고 자기도 똑같이 해주는 경찰이 어딨어.

여자는 멋쩍은 티를 애써 감추고 빨대를 쪼르륵 소리가 나도록 물었다. 갑시다, 에휴. 하며 다소 연기 같은 푸념을 내곤 먼저 자리를 털었다. 예고 없이 일어나니 남자가 따르는 게 더뎠다. 아직 반쯤 남은 아메리카노를 버리려고 하자 여자가 낚아채서 테이크아웃 잔으로 바꿔온다. 가면서 마셔요, 날도 더운데. 그렇게 말하며 얼음 잔을 건네준다. 남자가 그를 자연스럽게 받아드니, 관점에 따라선 아이 챙기는 부모 같기도 하고, 상냥한 연인 같기도, 날 때부터 같이 자란 죽마고우 같기도 한 장면이다.

시목과 여진의 관계를 수식하기에 셋 다 더없이 걸맞기에 어느 하나를 고르기는 어렵기도 하다.

내일은 공판 있다고 했죠? 전에 말했던 그 사건? 까다로워 보이던데. 근데 재판 나가면 긴장 안 돼요? 나는 증인석에만 앉아도 떨리던데. 라는 둥. 어김없이 대화의 물꼬를 트고 물길을 내는 것까지 순조롭게 여진이 다 해내던 중이었다. 시목은 그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늘 그렇게 옆에서 하는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지금은 별수 없이.

아까 말했던 거요.

네? 뭐요?

아까, 카페에서요.

카페에서? 뭘 말했지. 그 나일론 환자 둘?

아니라 부정한다. 그렇다면 뭐? 여진이 궁금한 얼굴로 올려봤다. 꾸물럭 어두워지는 하늘도 같이 보인다. 곧 비가 다시 쏟아질 낌새다.

그 이름이요. 뭐라고 했죠?

응? 뭐... 고라파덕이요?

시목은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답을 찾는 얼굴이 일할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여진은 그가 조금 전 대화에서 무언가 힌트가 되는 말을 찾은 것인가 싶어 진지하게 동참하기로 한다. 이름이라면 권 경사를 말하는 건가, 그도 아니면 상대방 이름? 그런 걸 말했던가? 아니면 상호명? 잠시동안 자신이 했던 모든 말을 진지한 얼굴로 되새기는 여진을 시목이 흘겨봤다.

제가 근래 들은 말 중에 제일 귀여운 단어였습니다.

으응? 여진이 웃음 반 경악 반의 얼굴로 시목을 올려본다.

귀여워요? 지금 귀엽다고 말했어요? 근데 뭐가요?

그, 피카.

헐. 여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뭔가 온몸이 간지러워져서 못 참겠는 기분이랄까. 한참 웃다가 시목이 다소 침울하게 식어있으니 자못 미안한 마음이 들어 웃음을 추슬렀다. 내가 참 어른스럽지 못하게. 목을 가다듬고 웃음기 거둔 얼굴로 시목을 마주한다. 시목은 손에 든 아이스 컵의 빨대를 한 번 물고는 언제나처럼 태연히 말한다.

저도 아는 거 있습니다. 예전 사무장님 휴대폰 벨 소리가 그거였어요. 노는 게 제일 좋아...

끝 음이 저 지하까지로 뚝뚝 떨어지는 게 도저히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줄 애니메이션 주제가로는 들리지 않는다. 옛날 일이 생각나기도 해서 속으로 쿡쿡댔다. 아무튼 연령대가 심히 낮아지긴 했으나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여진의 대화 소재가 떨어질 일은 없었다.

오~ 검사님 대단한데요. 그럼 상어 가족이랑 바나나차차도 들어봐요. 그게 요즘 대세예요.

그 바나나차차라는 말도 귀엽네요.

이 양반이 자꾸 왜 이럴까? 주차해 둔 차에 다다라 자연스레 조수석으로 향하던 여진이 이상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시목은 모르는 체하는 건지 어쩐 건지 먼저 차에 올라버린다.

카페에서 주차장까지 걸은 잠깐 사이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 시동을 걸자마자 에어컨으로 식혔다. 여진도 더운지 목을 덮은 머리칼을 슥 들어 손부채질한다. 얼마 안 가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친 잠깐 사이에 카페를 나온 것은 정답인 모양이다. 여진이 좀만 늦었어도 비 다 맞았겠네~ 중얼거리자 시목은 아이스 컵을 가운데에 내려놓고 몸을 숙여 차창 너머 하늘을 올려봤다. 좀처럼 출발할 기색은 보이지 않고 딴청만 가득한 게 묘해 여진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이윽고 시선을 맞춰왔다.

여름임에도 긴 셔츠와 재킷을 고수한다. 그 덕에 보는 여진이 대신 더위를 느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더없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카페에서 살짝 끄른 타이가 느슨해진 채다.

그거 다시 한번 말해보세요.

으응? 뭐를 자꾸요.

빼는 체해도 무얼 원하는지 여진도 모르지 않았다. 왜 원하는 건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고.

“피카츄. 피카츄요. 이제 됐어요?”

애들 만화 얘기 꺼낸 게 그렇게 웃긴가. 서른 넘고도 아직 그런 거 좋아한다고? 미안하지만 마흔이 되어도, 쉰이 되어도 계속 얘기할 겁니다. 말로 뱉진 않았고 속으로만 구시렁거렸다.

“그렇네요. 츄 때문인가 했는데.”

이제는 이 화제가 조금 지겹다 느껴질 즈음 시목은 홀로 분석을 시작했고, 그의 입에서 나온 한 음절의 단어가 여진의 귀를 간지럽혔다. 적막을 잔잔히 깨는 빗소리가 적당히 기분 좋기도 하고, 바깥세상의 습기 가득한 불쾌함과는 별세계에 있는 이 작은 공간이 안락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냥 경감님이 해서 귀여운 거였네요. 제가 말하는 건 전혀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별안간 결론을 내린 시목이 운전대를 감싸 안듯 기울인 몸을 일으켰다. 마주 보는 눈에서 읽힌 기류에 여진이 놀란다. 조금 전 들은 말을 해석하기도 버거운데. 지금 이러면 너무너무 부끄러울 것 같은데.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은 사이 입술이 살며시 부딪혔다. 츄, 소리가 나게.

더한 일이라 표현하자면 그런 것도 한 사이고, 살아온 시간을 생각하면 별것 아닌, 이 정도 스킨십은 문화권이 다른 나라에선 그냥 가볍게 인사로도 하는 수준이라 말할 수 있을 테다. 그럼에도 순간 붉어진 볼 기운을 어떻게 숨길 여력이 여진에겐 없었다.

아니 사실 그렇기에 새삼스러운 것일지도.

저 홀로 미스터리를 파헤친 시목은 그제야 안전벨트를 맨다. 여진에게 매어라 일러주는 것도 잊지 않고. 와이퍼가 움직이자 부옇던 둘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이 맑게 걷힌다.

여진은 차가운 손등으로 볼을 식히며 창밖으로 멍하니 던졌던 시선을 옆자리로 옮겼다. 남자는 평소의 표정으로 완전히 돌아와 있다. 사람 마음에는 이렇게 불을 질러놓고, 혼자 회복하면 그만인가.

웃기는 양반이다.





이 잔치에 저도 끼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주셨다면 감사하고, 시즌 2 즐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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