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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8월 13일
  • 6분 분량

여진시목

< 그래도, >

푸퓨 (트위터 @hyumsaeng_twt)

“내일은 정체전선 상에서 발달한 저기압의 영향을 받아 전국에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서울에는 호우특보가 발효되어 있으니 아침 출근길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공덕동.

TV 불빛이 집을 밝힌다.

집에 놓인 티비는 국정 소식을 전한다. 어지러이 국정을 전하던 뉴스는 금세 날씨 예보로 바뀐다.

낮춰져 있던 볼륨을 올려 날씨를 확인하는 손은 하루 종일 어지러운 국정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피로가 묻어 있다. 그 귀찮음이 사뭇 날카롭다.

발코니 너머로 보이는 서부지검의 위용은 변함이 없다.

집주인은 피곤이 깃든 표정으로 서부지검을 한 번, 비가 올 것이라는 썩 달갑지 않은 날씨 예보를 한 번 바라본다. 소파에 앉지 않고 소파 아래에 내려 앉아 등을 기댄 집주인은 텅 빈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서 빛을 내는 노트북 화면을 바라본다.

그러다 하루 종일 조용하던 핸드폰 진동 소리에 시선을 옮긴다. 드르륵 하며 소파 위에서 돌아가는 핸드폰이 집안을 비춘다. 집주인은 발신인을 확인하고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아까 리모컨을 누르던 날카로운 손길과는 대조적으로 천천히 핸드폰을 귀에 댄다.

-

“에이, 아까까지만 해도 날 좋았구만, 비가 오냐.”

“아까도 구름 잔뜩 끼어있었는데요.”

검사는 리모컨을 누르던 검지 손가락으로 하늘을 휘휘 저으면서 하늘에 낀 먹구름 좀 보라는 듯 말한다.

포장마차 천막을 타고 흘러내리는 여름 장마는 구름 위에 긴 자국을 덧그린다. 천막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한창 끓고 있는 국물 안주 소리와 함께 꽤 소란스럽다.

오랜만에 들어온 포장마차는 여름 장마의 서늘함과 달리 훈훈했고, 국물 냄새는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린 경감과 검사의 몸에 안정감을 채운다.

손가락을 휘휘 젓던 검사는 책망하는 듯한 흐린 눈이 자신을 쳐다보자 답지 않게 움찔한다. 경감은 쯧 하는 소리를 내며 소주를 깐다. 까드득 하는 소리. 경감의 소주 잔에 소주가 채워진다.

“검사님은요?”

고개 젓는 검사를 보며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검사의 빈 소주 잔에 나홀로 건배를 하고 경감은 소주를 한 입에 털어 넣는다.

“거기도 뭐, 여전하죠?”

“네.”

경감의 한숨 소리에 검사는 빈 잔을 쳐다보던 시선을 경감에게 옮긴다. 그 시선의 끝의 경감은 다른 날보다 소주 병을 기울이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빠르다. 검사는 눈을 가늘게 뜬다.

스트레스?

“맞아요. 스트레스.”

경감의 촉이 업무 외적으로 발동되는 때는 대부분 검사와 이렇게 술잔을 기울일 때다. 경감은 눈썹으로 말하는 검사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가끔은 우스갯소리로, 서에서 퇴근하면서 레이더를 끄고 나왔어야 했는데 아직도 레이더가 켜져 있는 자신을 책임지라는 농담을 자주 했다. 경감은 검사의 – 경감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어쩌면 – 유일한 말동무였다.

한편 검사는 대부분 말이 없었다. 검사는 경감의 기분을 파악할 수 있었고, 경감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 검사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어쩌면 – 유일한 존재였다.

서로는 서로를 불렀다. 경감은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말하는 편이었고, 검사는 그것을 묵묵히 들어주는 편이었다. 경감의 이야기는 대부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고, 어느 날은 검사와 관련된 이야기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 이야기도 꺼내지 않는 경감의 분위기가 꽤 날이 서 있다.

“검사님.”

경감이 검사를 부르는 소리에 검사는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쪼개다 말고 눈썹을 약간 들어올린다.

“오늘은 검사님이 말해요.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빠른 속도로 소주 한 병을 비운 경감이 다시 소주를 깐다. 내버린 소주 윗물이 포장마차 아스팔트를 까맣게 적신다. 검사는 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경감을 본다. 대개 부른 사람이 이야기를 꺼내곤 했는데 평소 때와는 다른 전개라 검사는 눈을 한 번 도륵 굴리고는 경감의 손에서 소주 병을 가져와서 자기 앞 잔에 소주를 따른다.

“무슨 일 있어요?”

검사는 질문을 하고 비스듬히 턱을 괴고 경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실 격무에 시달린 날은 술이 고프진 않았다. 몸이 한껏 긴장을 한 표시가 위장에 남는지 집에 오면 빈 속이 쓰리기만 했으니까. 사실 나무젓가락을 뜯어 놓고, 소주를 따라 놓고, 한 잔 씩 홀짝거렸던 지난 날은 경감과의 보조를 맞추기 위한 수단이었달까.

검경수사권 조정에 관한 이야기가 경찰과 검찰 내부를 넘어서 언론에까지 닿기 시작하자 경감과 검사는 더 눈 코 뜰 새가 없어졌다. 수사권 조정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은 차치하고, 수사권 조정에 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면서 상사들의 신경질이 늘어서라고 해야 하나. 경감과 검사는 아래로 내려오는 상사들의 신경질과 특임팀이었던 경력을 명분으로 가중되는 업무에 시달렸다.

제시간에 퇴근을 한 것도 아주 오랜만이라 이렇게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근 한 달 만의 일이다.

그런데 한 달 만에 본 경감이 검사는 약간 당황스럽다.

“그냥. 오늘은 이야기하기가 싫으네.”

검사는 다시 한 번 눈을 도륵 굴리면서 한숨을 쉰다. 무슨 일일까. 이런 방식으로 감정을 드러냈던 적이 있었던가. 경감은 검사를 부른 내내 검사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검사가 경감의 눈을 쳐다보려 하면 오히려 소주 잔에만 시선을 고정하는 경감 탓에 오늘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오늘은 내가 레이더를 켜야 하는 날인가 싶어 검사는 경감을 하나하나 눈으로 뜯어보기 시작한다. 소주를 따르는 손은 계속 분주하고, 두 번째로 깐 소주는 벌써 반이나 비었다.

심지어 내일은 수요일. 화요일 밤에 이렇게까지 마실 이유가 있나? 경감이 아무 이유 없이 휴가를 냈을 리는 없다. 아니 휴가를 냈나? 검사가 알기로 경감은 휴가도 잘 내지 않았는데. 새로 들어온 서장이 문젠가.

머리 속이 엉켜버려 한껏 미간을 찌푸린 검사는 소주 병을 기울이는 경감을 막지도 못하고 무어라 말을 꺼내지도 못하는 이 난제에 골몰하던 중 머리 속으로 달력을 훑는다. 광복절은 아직 4일이나 남았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경감이라도 휴일을 싫어하지는 않을 터였다. 올해는 8월에 공휴일도 하루 더 늘린다고…

검사는 턱을 괴고 있던 반대 손으로 다시 채워진 경감의 잔을 들어서 한 입에 마셔버린다. 말이 적은 검사는 행동이 빠른 편이라 가끔 경감을 놀라게 했는데 이번에도 경감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포장마차에서 만난지 거의 한 시간 여 만에 놀란 표정으로 검사의 눈을 마주치기 시작한다.

검사는 그제서야 눈을 마주쳤다는 듯 웃는다. 그리고 입을 뗀다.

“미역국은, 먹었어요?”

검사의 시선이 경감의 눈동자에 멈춘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항상 예상치 못하게 살가운 사람 때문인지 눈이 삽시간에 빨갛게 변한다. 벌써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 차 있다.

“아뇨.”

“왜요.”

“바빴거든요. 하루 종일.”

포장마차 바깥의 비는 경감과 검사 사이의 침묵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비가 만들어내는 백색소음은 경감의 북받친 감정을 조금 진정시켰고, 검사가 할 말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이윽고 검사가 말문을 튼다.

“요즘 들어서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요.”

경감은 빗소리보다 크지도 않은 검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다른 사람들 이야기만을 들으면서 살 수 있을까. 내 안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는 있을까.”

누군가의 안위를 지켜주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본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행위란 결국 부패와 직결되는 행위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둘에게 본인만을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일을 처리해주는 것이 업인지라 본인의 소소한 행복을 위한 목소리보다는 대의를 위해 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쉬웠고 또 그런 만큼 제약 사항들도 많았다.

또 검사에게 ‘시목’ 이라는 본인의 인생은 살려두기 보다는 지우기가 훨씬 마음이 편했고 또 쉬웠다.

“경감님이 제 뇌를 해부했을 때 다른 마음이라는 건 없다고 믿었죠. 그 때까지만 해도 그런 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뇌를 해부한다는 이야기에 피식 웃는 경감은 ‘여진’ 이라는 본인의 뇌 구조에 대해 생각한다. 난, 뭘 위해서 이렇게 사는 거지.

“그런데 있더라고요. 다른 마음이라는 거.”

시목은 여진의 소주 잔에 소주를 채워서 자연스럽게 여진의 앞에 놓아주고 본인의 잔에 소주를 따른다. 여진은 눈이 붉어진 것이 멋쩍었는지 한 번 훌쩍인다.

“검사님이 찾은 ‘다른 마음’이 뭔데요.”

시목은 자기 잔에 따른 소주를 홀짝 마신다. 한 번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쉰 시목은 천천히 입을 연다.

“나도 아픔을 가진 인간에 불과하다는 거요.”

어느 새 말라버린 소주 윗물이 있었던 곳 즈음을 멍하니 응시하다 시목은 소주를 또 한 잔 따른다. 여진과 시목은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면서 나도 결국엔,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다는 변함없는 사실에 대해 생각한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게 성숙하다는 건, 어른이 제 구실을 못 했다는 거고, 그 ‘제 구실’ 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이는 그 아픔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어른으로 자랐죠.”

“또 아프면 얘기해요. 그 때.”

“그래도 말해요. 병원에 옮기기라도 하게.”

시목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던, 지금처럼 울음 섞인 목소리의 경감을 떠올리고 슬며시 웃음을 띄운다.

여진은 그런 시목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런 말들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들을 지새워야 했을까.

“자기 생일도 잊어버려야 할 만큼, 자기 인생도 지워내야 할 만큼의 삶의 무게를 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때엔 이미 어른이 되고 난 이후였으니까요. 다른 마음을 찾았다곤 하지만, 달리 할 일이 없더라고요.”

두 번째로 깠던 소주는 어느 새 바닥을 보였고, 여진과 시목은 빈 잔을 서로 기대어 놓고 포장마차 천막 밖에서 들리는 빗소리에 집중한다. 그러다 시목이 먼저 몸을 일으키자 여진의 시선이 그를 따라 움직인다.

“어디 가게요.”

“빵집이요.”

“이 시간에?”

“가 봐야 알죠.”

시목의 말에 여진도 시목을 따라 엉겁결에 일어난다. 여진은 가방을 만지기도 전에 시목이 술값을 계산해버리고 우산을 팡 편다. 비가 후두둑 하고 우산 위로 쏟아지는데 비 오기 전 집에서 나와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여진은 자연스럽게 시목의 우산 아래로 들어간다. 시목은 여진의 손을 깍지 껴 잡고 천천히 발을 옮긴다.

“아니, 뭐야. 왜 갑자기 빵집 가는 건지는 말을 해줘야 나도 따라가든지 말든지 하지. 이렇게 끌고 가기만 하면 되나?”

“경감님 생일 파티는 해야죠.”

여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응?’ 하는 소리를 크게 내며 비 때문에 생긴 물 웅덩이를 피하던 발길에서 시선을 떼고 시목을 바라본다. 시목이 그 소리에 보일 듯 말 듯 웃는다. 여진이 말을 잇는다.

“이미 다 지나갔는데 뭐.”

“아직 몇 시간 남았으니까요. 나는 내 다른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도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경감님 케이크는 지금 가면 살 수 있거든요.”

시목의 손가락 끝이 불 켜진 베이커리를 가리킨다. 여진은 그 손가락에 씨익 웃으며 시목의 등을 팡 친다.

“황시목이 다 컸네.”

시목이 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여진을 바라보자 여진의 웃음이 더 커진다.

“아유 빨리 들어갑시다. 내 생일 다 지나가겠네.”

여진이 깍지 낀 손을 끌어당기며 베이커리 안으로 들어선다. 시목은 아휴 하는 한숨을 쉬며 못 말린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내 시목은 못 이기는 척 여진을 따른다.

베이커리에서 들려오는 점원의 인사 소리가 빗소리와 어우러진다.




안녕하세요 비밀의 숲 2 합작에 참여하게 된 푸퓨 입니다. 시즌 1 때 정말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의 시즌 2 합작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 글을 다들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합작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또 참여하고 싶을 만큼 쓰면서 많이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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