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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8월 13일
  • 4분 분량

창준시목

<온기>


곰 (트위터 @rha_sws)



공판자료의 검토를 마치고 창문을 쳐다보았다. 창문에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내일부터 온다더니.”

비가 무수히 내리는 장마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를 피하려 발을 빠르게 움직였고 창준도 그들처럼 바쁜 걸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내일은 주말이니 집에만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 앞 골목에 다다랐을 무렵 발치에 검은 솜뭉치가 치였다. 뭐지 하는 마음에 자세히 보니 검은 고양이가 누워서 자고 있었다. 깜짝 놀랐지만 발로 찼다는게 더 신경쓰였다. 혹여나 다친 건 아닌지 걱정이였다. 근데 고양이는 비를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에 유심히 지켜보니 이건 누워서 자는 게 아니라 쓰러진 것 같았다. 비가 많이 와서 고양이임에도 불구하고 물에 젖은 생쥐 꼴 이였다.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양이를 들고 집에 왔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 없는 창준은 막막했지만 저 추운 밖에 고양이를 혼자 둘 수는 없었다. 일단은 털을 말려주고 담요를 깔아 그 위에 놓아주웠다. 고양이를 안고 오느라 젖은 옷을 벗은 뒤 씻고 나온 창준은 아까보단 안정된 숨으로 자는 고양이에 안심하였다.

“잠은 잘 자네.”

창준은 고양이를 한 번 쳐다보고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눕혔다.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눈이 스르르 감겼다.

‘지이이잉’

알람 소리에 정신이 들기도 전에 자신의 다리 사이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놀란 마음에 이불을 걷은 창준의 시야에는 고양이가 자신의 다리 사이에서 웅크려 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불을 걷는 바람에 깨버린건지 고양이가 반쯤 감긴 눈으로 창준을 쳐다보고 있었다.

“잘 잤니?”

창준은 자신을 바라보는 고양이를 향해 물었다. 고양이는 대답이라도 하듯 감겼던 눈을 한 번 깜박였다. 창준은 살짝 웃으며 고양이를 쓰다듬어주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주방으로 향하며 창준은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뭘 줘야 할지 몰랐다. 창문을 보니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준은 한숨을 쉬었다. 그릇에 물을 따라 바닥에 놔주며 자신을 따라나온 고양이를 본다.

"이거 먹고 있어. 금방 밥 사올게."

고양이는 창준을 쓱 쳐다보고는 물그릇으로 가 물을 마신다. 그 모습을 본 창준은 얼른 나갈 준비를 하고 문을 나선다. 비가 얼른 그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걸으니 어느새 마트에 도착하였다. 마트에서 고양이용 사료와 간식을 조금 사고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우산을 정리하고 신발을 벗고 있으니 고양이가 다가와 다리에 얼굴을 부볐다. 창준이 웃으며 쓰다듬어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창준을 두고 다시 거실로 가버린다. 고양이를 따라 들어간 창준은 주방에서 그릇을 꺼내 사료를 부어주었다. 어느새 곁으로 온 고양이는 사료 냄새를 맞더니 휙 돌아가버렸다.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을텐데 왜 그러지라는 생각에 사료를 손에 들고 따라가 웅크려있는 고양이에게 내밀었다. 고양이는 그런 창준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몸을 더 동그랗게 웅크릴뿐이였다.

"배가 안 고픈거니?"

꼬리만 살짝 움직일뿐 고양이는 묵묵부답이였다.

"저기 둘테니깐 배고프면 먹어봐."

-

그 말이 무색하게 고양이는 하루종일 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건가 걱정이 된 창준은 저번에 방송 프로그램에서 아픈 고양이가 북엇국을 잘 먹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다녀올게. 밥 좀 먹어봐."

창준은 집을 나가기 위해 신발을 신는 자신을 따라온 고양이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고양이는 꼬리만 살짝 움직일 뿐 아무 대답도 없었다. 당연한건가 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려는 순간 뒤에서 '야옹-'이라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고양이가 다가와 다리에 얼굴을 부비고 있었다. 아, 라는 탄식과 함께 살짝 웃는 얼굴로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다시 말했다.

"다녀올게."

고양이는 만족했다는 듯이 뒤돌아 가버렸다. 슈퍼에 다녀온 창준은 바로 주방으로 가 북엇국을 만들었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지 어느새 고양이가 발치로 다가와 앉아서 창준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고양이의 모습에 창준은 아직 뜨거우니 식으면 주겠다고 후후 불어서 냉장고에 잠시 넣어두고 고양이의 앞에 앉았다. 이건 잘 먹어줘야 한다면서 쓰다듬으니 고양이가 창준의 다리 위에 올라와 앉으며 꼬리를 살짝 흔들었다. 그렇게 무릎에 누워있는 고양이를 몇 분이나 쓰다듬었을까 고양이가 무릎에서 내려왔다. 창준도 일어나 냉장고에서 북엇국을 꺼내 주었다. 고양이는 냄새를 맡아보더니 이제 잘 먹기 시작했다. 먹어줘서 다행이네 라는 생각을 하다가 쳐다보면 신경이 쓰일까봐 고양이를 두고 거실 쇼파에 가 누웠다. 하루종일 고양이 신경 썼더니 피곤이 몰려왔다. 눈을 감고 얼마나 지났을까 배가 묵직해주는 기분에 눈을 뜨니 고양이가 배 위에 앉아 창준을 쳐다보고 있었다. 잘 먹었는지 물어보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손을 뻗으니 손에 머리를 부비며 그르릉 거렸다. 계속 쓰다듬어주니 배 위에서 고양이가 몸을 웅크려 말았다. 조금 무거운 느낌이 들었지만 이 작은 온기가 싫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으으….”

신음 소리가 나왔다. 몸이 무겁고 움직여지지 않았다. 뭐지 꿈을 꾸고 있는건가 생각을 하며 눈을 뜨니 눈 앞에 한 남자가 담요를 두른 채 몸 위에 누워있었다.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했다. 진짜 꿈인가 생각하는데 어느새 눈을 뜬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일어나셨네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그 소리에 놀란 창준은 상체를 일으켜 세우니 남자를 다리에 앉힌 자세가 되었다.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에 빠져드는 기분이였다.

“추운데 옷 좀 주시겠아요?”

남자가 창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제서야 창준은 정신을 차렸다. 담요만 걸친 남자에게 일단은 옷을 꺼내주고 집 안을 살펴보았다. 분명 고양이랑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상한 남자만 집에 있는 것이 아닌가. 옷을 입는 남자는 창준의 곁으로 다가와 창준의 손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창준은 손을 뒤로 물리고 입을 열었다.

“나가주실래요?”

남자는 묵묵부답 이였다. 그저 창준의 등 뒤로 숨겨진 손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 나가시면 경찰 부를 겁니다.”

“왜, 안 쓰다듬어주세요?”

경찰을 부른다며 남자를 지나치는 창준에게 남자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뭐라는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살짝 인상을 쓴 창준이 남자를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냐는 얼굴에 남자는 어제도 쓰다듬어 주셨잖아요라고 말하며 계속 쓰다듬기를 강요했다. 이젠 짜증이난 창준은 무언가 말하려 남자를 쳐다보았고 남자도 창준을 쳐다봐 눈이 마주쳤다. 느낌이 이상했다. 어디선가 느껴본 눈빛 이였다.

“고양이..?”

고양이랑 눈빛이 비슷하다고 느끼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미친 것 같은 소리였다. 내가 진짜 이상해졌나보다 빨리 이 남자를 쫓아내고 고양이나 찾아봐야겠다.

“고양이면 쓰다듬어 주실 건가요?”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할 세도 없이 눈 앞에 남자가 사라졌다. 창준의 동공이 흔들렸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건가 생각할 무렵 남자가 사라지고 남은 옷가지가 움직였다. 놀란 창준은 뒤로 살짝 물러났다. ‘먀옹-‘ 옷가지 속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가 나며 옷 위로 고양이의 머리가 나왔다. 당황한 창준이 고양이를 쳐다보고 있으니 고양이가 창준에게로 다가와 창준의 다리에 얼굴을 부볐다. 진짜 고양이라고? 창준의 어안이 벙벙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이였다. 그러니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작은 고양이가 그 사람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고양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고양이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양이를 쓰다듬어주니 만족했는지 어느새 사람으로 변해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입고 있었다.

“일단 나와봐.”

창준은 남자를 식탁에 앉히고 물이 든 컵을 건내주었다. 컵을 받아 든 남자는 창준만을 쳐다보았다. 그 눈에 비친 창준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일단 넌 누구야?”

“시목, 황시목입니다.”

“그래 시목이. 사람인거지?”

“네, 정확히는 고양이 수인이에요.”

믿을 수 없는 얘기지만 아까 그 상황을 겪었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이창준. 아저씨 아니고.”

그 뒤로 서로 많은 얘기를 했다. 시목이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창준을 올곧게 바라보며 시목은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이는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했다. 부모님과는 따로 산다고 했다. 그제는 어떤 일이 있어서 쓰러져있었다고 한다. 어딘가 씁쓸한 시목의 얼굴을 보니 무슨 일인지는 부러 묻고 싶지 않았다. 수인에 대해서도 들었다. 많지는 않지만 수인들이 곳곳에 있다고 했다. 수인들은 서로 느낌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시목의 말이 끝나고 창준도 자신에 대해 말해주었다. 나이는 30살에 검사로 일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지금은 혼자 산다고 하였다. 얘기를 다 한 후 정적이 찾아왔다. 창준은 일단 얘를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니 집으로 보내는 게 맞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창준을 눈치챈건지 시목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살게 해주세요.”

“뭐?”

“아저씨 옆이면 괜찮은 것 같거든요.”

안된다고 하려 했지만 저 고양이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니 안된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럼 조금만 머물다가 돌아가라고 했다. 시목의 표정이 바로 바뀌었다.

“배고파요.”

고양이가 아니라 사실 여우인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엇국 밖에 없는데.”

“그거 주세요. 맛있어요.”

북엇국을 차려주니 잘 먹는다. 마치 어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에 같은 아이가 맞구나 느낀다. 이 아이와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지만 함께 있는 지금이 싫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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