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8월 13일
- 2분 분량
시목동재
<순환>
물주 (트위터 @__MULJU)
문득 눈을 떴더니 창밖이 온통 뿌옇다. 몽롱한 정신으로 붓기 어린 눈을 부릅 뜨고 마주한다. 창밖이 온통 하얀 게, 내가 잘못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았다 뜬다. 눈앞을 아른 거리는 하얀 연기에 나는 다시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고 다시 뜨자 눈앞을 가리던 연기가 걷히고 익숙한 사내의 몸이 드러난다. 공사장 건물 자제더미 위로 건장한 몸이 축 늘어져 있고 희뿌연 연기가 그 주변으로 가라앉는다. 나는 놀라 천천히 다가가고 사내의 옆에 주저앉는다. 다급하게 어깨를 흔들고 입에선 ‘수석님’ 소리가 메아리마냥 반복된다. 그리고 죽은 듯 축 늘어졌던 사내의 손이 천천히 오르고 힘겹게 입을 달싹인다. 너는 아직 기회가 있어. 사내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눈꺼풀을 바르르 떨며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는다. 동재야. 사내는 어렵게 숨을 뱉으며 그 새로 말을 겹친다. 너는, 이 길로 오지마. 사내가 말을 끝내자 숨이 끊어지고 눈앞이 희뿌얘진다.
*
서늘한 추위에 눈이 떠졌다. 에어컨과 제습기를 틀었음에도 집안 공기가 한층 가라앉아있었다. 사건 자료를 훑던 중 책상에 기대 잠이 든 모양이었다. 나는 뻣뻣해진 허리를 곧게 펴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돌아가는 에어컨과 제습기 소리. 창밖은 안개가 짙에 깔려 뿌옇게 보였다. 나는 자료를 정리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바닥에 닿는 발바닥이 차가워 털이 곤두섰다. 나는 리모컨을 찾아 에어컨을 끄고 제습기의 강도를 높혔다. 시끄럽게 돌아가던 에어컨이 꺼지자 집안은 한층 조용해졌다.
“서 검사님.”
조용한 집안에서 작은 목소리로 불러도 크게 들렸다. 나는 복도를 지나 신발의 유무를 확인하고 화장실 불을 켰다. 휑한 화장실 불을 끄고 한 차례 더 부를 찰나였다.
“…님.”
침실에서 들리는 소리에 걸음을 옮겼다. 스탠드 하나 켜놓지 않은 방안에 서동재가 있었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둥그렇게 몸을 말고 누워있었다. 방안 공기는 차갑고 더욱 습했다. 나는 침대로 다가가 서동재 옆에 앉았다. 내가 앉고 침대가 조금 꺼지자 이불이 뒤척였다. 이불 안에서 엎드려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데 산처럼 솟아있었다. 나는 그 위로 손을 뻗어 천천히 쓸어내렸다.
“검사님.”
“…….”
“에어컨 껐습니다. 추우세요?”
“…수석님.”
솟아오른 이불이 조금씩 들썩거렸다. 작게 웅얼거리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나는 입을 다물고 서툴게 이불 위를 쓰다듬어야 했다.
서동재는 안개가 짙게 깔린 날이면 죽은 이창준을 찾았다. 뿌연 안개는 먼지를 일고 죽던 그때를 상기시킨다고 했다. 그 안에서 죽어가며 자신을 잡아오던 무겁고 차게 식어가는 손을 꼭 잡던 것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고 했다. 문득 ‘서동재 그 놈은 변한 게 없다’ 라며 나를 부르던 검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그는 이창준이 죽은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 그 시간, 그곳에서 멈춰있는 듯 했다. 그는 가끔 안개가 끼지 않은 날에도 묵직한 굉음이나 공사장 철제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면 흠칫 놀라 귀를 틀어막았다. 괜찮다가도 그런 식으로 이창준의 흔적과 마주하게 되면 안색이 파리해지고 손을 떨곤 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안개가 그치고 그가 이불 안에서 빠져나와 내게 안겨 내 이름을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서동재를 위로할 수도, 몸을 잡아끌어 현실과 마주하게 할 수도 없었다. 그가 이창준을 두려워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해서였다. 이창준의 자살을 눈앞에서 목도한 것은 서동재 뿐만이 아니었다. 이창준이 몸을 던지고 안개 같은 먼지 속에서 죽는 것을 함께 지켜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죽음에 앓지도 두려워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서동재가 무얼 그리 두려워 하며 슬프게 울고 이불 밖에 무서워 나오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기에. 내가 서동재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수석님.”
울음 섞인 목소리가 한 번 더 애원하듯 이창준을 부른다. 나는 둥글게 솟은 이불 위로 몸을 숙여 기댔다. 잘게 떨리는 연약한 몸뚱아리 위를 짓누르며 눈을 감고 사락거리며 이불을 쓸었다. 제습기가 웅웅 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제습기의 강도를 높인 것이 다행이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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