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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8월 12일
  • 6분 분량

여진세원

<14.9화>


해 (트위터 @el_sol_verde)


달칵. 삐비빅. 여진은 전자음 소리와 함께 닫힌 철문을 몇 초간 응시했다. 저벅저벅, 문에서 멀어지는 황시목 검사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검사님의 무표정한 얼굴과 갈기갈기 찢긴 양복 정장이 천장에 걸린 소름 끼치는 광경이 번갈아 눈앞에 나타났다. 따뜻한 허브차로 속을 덥혔다고는 하지만, 더 깊숙한 곳에서부터 슬금슬금 뻗어나는 냉기에 다시금 소름이 돋았다.

여진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어보기도 했다. 연신 오르락내리락하는 경찰서 형사부 생활이 그렇다 하지만, 특검팀에 들어온 이래로 특히나 상식을 벗어난 일이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었다. 비판이 아닌 비관적인 태도는 전혀 좋아하지 않는 여진이지만, 몇 달 동안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자꾸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새벽의 우울감에 빠지려는 찰나, 여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문득 황 검사에게 무슨 일이 또 생긴 건가 싶어 후다닥 꺼내본 휴대전화 화면에는 전혀 다른 이름이 떠 있었다. 눈이 동그래진 여진은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윤 과장님? 무슨 일이세요?”

- 한 경위님! 괜찮으세요?

“네?”

상황은 이러했다. 황 검사에게 연락을 받은 여진이 다급한 마음에 장 형사에게 걸려던 전화를 윤 과장에게 잘못 건 모양이었다. 그것마저도 전화를 잘못 건 줄 모른 채 ‘미치겠네’ 따위의 단말마를 연발하다가 끊어버리고,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으니 세원 입장에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연락이 닿은 여진이 대충 상황 파악을 한 뒤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는 찰나, 택시가 여진의 집이 위치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과장님, 저 잠깐만요.”

- 경위님, 저 근데-

“네네, 저 택시 내려서 설명 드릴게요. 아저씨, 저기 앞에 저기서 세워 주…어?”

여진의 집 앞, 주황색 가로등 불 아래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세원은 차 문을 열어주곤, 후다닥 계산하고 택시에서 내리는 여진에게 멋쩍게 웃었다. 어, 어, 어! 끊기지 않은 전화를 손에 든 채 휴대전화와 세원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여진에게. 아직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있던 세원이 말했다.

“저 지금 경위님 집 앞이에요.”

“술 못 드신다면서!”

거, 내가 거짓말일 줄 알았지. 벌써 두 번째 소주병을 향해 손을 뻗는 세원을 보며 여진은 가볍게 눈을 흘겼다. 얼굴이 발개진 세원은 고개며 손을 젓다가 이내 여진의 손에 술병을 빼앗기고 만다. 자작은 노노, 중얼거림과 함께 두 손 모아 기울인 술이 두 손 모아 내민 술잔 속으로 쪼르륵 떨어졌다.

택시에 내리자마자 눈앞에 선 세원의 모습에 잠시 얼떨떨해하던 여진은 허둥지둥 황 검사 집에서 벌어졌던 일을 설명했다. 심각하게 이야기를 듣는 세원에게 아침에 용산서에 부탁해 놓을 예정이란 말을 한 뒤 잠시간 침묵이 흘렀고, 그러다 여진이 말을 꺼냈다. ‘멀리 오셨는데 술 한 잔 더 들고 들어가셔야 하나.’ 사실 여진은 2차 이야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세원이 좋다고 할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세원이 여자분 혼자 사시는데 집에 들어가긴 좀 그렇다며 여진의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 앞쪽의 편의점을 가리켰을 때, 여진은 으레 짐작한 대로 세원이 거절했으리라 생각하곤 꾸벅 인사를 건네버렸다. 그러다가 어라, 고개를 쳐들고 갸웃거리는 여진에게 세원은 다시 그 특유의 일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용한 새벽, 간간이 편의점을 오가는 올빼미족과 차 몇 대가 소리를 채웠다가 사라졌다. 그 사이 몇 번, 또 몇 번, 쨍- 잔이 맞부딪치고, 술을 한 모금 입에 머금은 세원이 손가락 새로 잔을 굴렸다. 씁쓸한 알코올 향에 미간이 잠깐 찌푸려졌다가 이내 다시 선한 눈매로 변한다. 그 착한 눈가가 움츠러들어 서글퍼지는 사연을, 여진은 저도 모르게 숨소릴 죽인 채로 살폈다.

“사람들은 잊으려고 술을 마신다고 하는데, 저는 그게 안 되더라고요.”

‘죽었어요, 아이가.’

처음 특검팀을 꾸리던 날, 한조 그룹과의 첫 대면 때 이연재 씨의 말에 굳어지던 세원이 떠올랐다. 이 새벽도 그러했다.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그러다 와르르, 금세 세원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여진의 가슴이 철렁거렸다. 누구에게도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그 어떤 물음도 않던 그의 단단한 어깨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음에도, 여진은 섣불리 아는 척 위로를 할 수도 갑자기 고갤 돌려 모른 척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위태롭게 파도치는 세원의 눈을 꼼짝없이 들여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입을 연 여진은 고르고 고른 다섯 글자, 두 마디의 말을 건네었다.

“울어도 돼요.”

넘실대던 바다는 끝내 넘치고 만다. 줄곧 외로이 참았던 슬픔이 한 줄, 뺨 위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여진은 세원의 손을 한 번 힘주어 잡았다. 차갑게 식어있을 것 같던 손은 의외로 따뜻했다. 한동안 말없이 술잔을 내려다보던 세원은 익숙하게 눈물을 말려 보내고 이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세원은 여진이 내밀어준 손을 잡았다.

“참 따뜻하신 것 같아요, 한 경위님.”

“아니에요.”

“서장님 일도 그렇고, 박경환 건도….”

갑자기 넘어간 대화의 방향에 여진은 고개를 저었으나, 마음과는 달리 입에 털어 넣은 술이 붉은빛을 하고는 뺨 아래서부터 위로 기어 올라갔다. 세원은 그렇게 더워지는 여진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용조용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의지 많이 하고 있어요.”

불판에서 익어가던 돼지껍데기가 사방으로 툭툭 튈 때의 느낌이었다. 마음 아픈 사연을 모르는 척 같이 아파해주다가, 갑작스러운 칭찬에 낯부끄러워지고, 그러다가 이젠 사랑 고백이라도 들은 기분이었다.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일 거로 짐작했으나, 어쩌다 보니 손을 마주 잡은 상태에서의 그런 말은 어쩐지 그 이상의 마음이 담겨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넘겨보려, 여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 농담으로 응수를 하려 했다.

“오, 제가 그런 존재예요?”

그러나 여진의 마음이 그렇게 순순히 넘어가 주질 않았다. 분명 동정일 수도 있었고, 처음 보는 모습에 대한 놀라움일 수도 있었다. 칭찬에 대한 기쁨, 동료애, 취기 등등, 가능성은 무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어쨌든 간에 세원은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눈을 맞춰왔고, 답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여진은 분명 축축함을 느꼈다.

특검팀 내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섬이 없는 사람이었다. 김정본 씨의 농담이나 계장님의 오두방정에도, 한쪽 구석에 서서 피식피식 웃고 마는 이였다. 당신이 다칠까 싶어 몸을 잔뜩 웅크리는 고슴도치마냥 제 공간을 최소한으로 좁혀서 선 윤 과장에게 다가가고 먼저 말을 걸었던 건 항상 여진 쪽이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과장님?’ ‘과장님 여기 같이 좀 가실래요?’ ‘과장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녜요?’ 그럴 때면 잠깐 시선을 맞추다가도 금방 옅은 미소를 짓곤 고개를 돌려버리던, 그런 윤 과장님의 눈동자는 까만빛을 띠고 있구나. 오른쪽 눈동자 테두리를 한 바퀴, 거기에서 양옆으로 큼직하게 찢어진 눈매, 방금 슬픔을 한껏 머금고 있다 툭 떨구어버린 눈가. 생전 처음 세원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정신없이 눈 주변을 훑던 여진은 문득 세원이 줄곧 저와 같은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그만 입김 덩어리가 입술 새로 둥실 떠올랐다. 여진은 목 뒤로 느껴지는 간질거림에 기침을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랬다간 그 순간이 무너질까 싶어 아무런 움직임도 할 수 없었다.

집요한 눈 맞춤이 길어졌다. 그런데도 시선은 좀처럼 늘어질 생각을 않고 팽팽한 탄성을 유지했다.

아직은 쌀쌀한 봄이었다. 술기운인지 찬바람 때문인지 모르게 빨개진 코끝이 찡 울렸다. 그 울림과 동시에 마주 잡은 손 사이의 정전기, 방석 하나 없이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붙이고 있던 엉덩이의 저릿함, 머릿속 뜨거움, 온몸의 감각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와 여진의 뇌는 소리 없는 고함을 질렀다.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던 세원의 오른쪽 눈이 점점 커졌다. 아니, 눈이 갑자기 커질 리가 없었다. 편의점 식탁을 넘어 다가온 얼굴에 서로의 코가 닿을 지경에 이르자, 여진은 눈을 스르륵 감고 고갤 내밀었다.

그렇게 몇 초가 겨우 지났을까. 여진에게 닿은 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미안해요.”

여진은 번쩍 눈을 떴다. 조금 전 눈앞에 있던 까만 눈 한 쌍은 어딜 가고, 반대편으로 홱 돌아간 옆얼굴이 뻣뻣하게 굳은 채 눈앞에 자리했다. 언제 가까이 있었냐는 듯, 세원의 두 손 역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어머.”

여진은 아프게 입술을 깨물었다. 평소의 눈치 빠른 한여진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오독을 저질러버린 것이었다. 동정, 기쁨, 슬픔, 술기운, 안타까움, 신기함, 다른 모든 마음일 수 있는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윤 과장이 저를 떠본 것이었든 실수의 끄트머리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 사고를 면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었든 상관없었다. 여진은 혼자만의 오해에 빠져 순간의 기분에 이끌려버린 스스로가 쪽팔려 미쳐버릴 것 같았고, 부끄러움은 우선 뒤로 미뤄두고 상황부터 수습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머리를 굴렸다. 몇 날 며칠간의 계획으로 이루어진 서장님의 체포와 추가 조사, 그날 늦저녁 무렵의 특검팀 해체 소식, 옥탑방 회식, 한밤중으로 이어진 황 검사님 집 소동까지, 분초의 틈도 없이 꼬리를 잇던 업무의 끝에 매달린 새벽녘. 긴장의 연속, 그 끝에 대롱대롱 열린 술판에 마비된 머리는 느릿느릿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신이 사르륵 녹아버린 것이리라. 의미 없는 해프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금방 머릿속에서 사라질 수많은 기억 중 하나일 것이었다.

“아휴, 뭐가 미안해요. 제가 더 미안하네, 하하. 이게 무슨 일이래….”

그러나 세원은 여진이 짧은 순간 부리나케 만들어놓은 핑곗거리를 보기 좋게 걷어 차버린다. 세원은 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민망함을 털어 내려고 시도하는 여진을, 용수철 단 듯 멀리 튕겨 나가려는 여진의 손을 또다시 붙들었다. 커다랗고 뜨거운 손이 여진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찰나, 손끝이 여진의 손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세원의 손은 이내 불에 덴 듯 화들짝 떨어졌다. 여진은 그가 잡고 있던 제 손등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플라스틱 탁상의 파란 색깔과 대비해 여진의 손은 더욱 희어 보였고, 그 위를 덮고 있던 세원의 손이 붉은 잔상이 되어 둥둥 떠다녔다. 열 감지 카메라로 들여다본다면 손자국이 확연히 드러나도록 빨갛게 표시가 되어있을 것 같았다.

“감히 제가….”

세원의 말과 행동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였다. 여진에게서 솟아난 물음표가 세원을 향했다. 무슨 의미인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여진은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그 시선 끝에는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을 한가득 눈에 담은 세원이 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해요.”

공항에서의 추격전, 그리고 몸싸움 끝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여진은 윤 과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본 적 있던 그 눈빛의 의미를 깨달았다.

굳게 닫힌 세원의 입가가 바르르 떨렸다. 그 파동이 물기 가득한 공기를 타고 흘러내려 여진에게 닿았다. 눈앞으로 물방울이 보일 정도로 습도가 높았다. 여진이 올려다보는 눈동자도 그러했다. 분명 실내였음에도, 공기 중에 뿌옇게 흩뿌려진 새벽녘의 안개가 눈 앞을 가리는 것 같았다. 사실과 거짓, 진심과 가짜, 그 무엇도 구분할 수 없이 흐릿하기만 했던 그 날 새벽처럼.

‘미안해요, 한여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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